【기자수첩】 저항시인 윤동주 시를 품고 빛을 전한 유고 보전가옥 『정병욱 생가』 찾아서…

1948년『강처중·정병욱』등에 의해 처음 출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한국의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들을 모은 유고시집이다.

윤동주시집 1948년 초판표지.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윤동주시집 1955년 표지.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문은 윤동주의 정신적 스승이자 당시 경향신문 주필이었던 ‘정지용’이 쓰고, 발문은 윤동주의 친구이자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이 썼다 한다. 본래는 30여 수의 시밖에 없었으나 간도에 남아있던 윤동주의 친인척이 윤동주의 시들을 가지고 내려와 현재 112여 수에 이르는 시와 네 편의 산문이 삽입되어 있다 한다.(최근수정 : 2024.7.28)

펜으로 일제와 맞서 싸운『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집』제1부는 윤동주의 서시(序詩)외 18편이 게재된 유고시집이다. 1948년 ‘정음사’에서 초판이 발행되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집 첫번째 시 제목은 “서시(序詩)” 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집’은 원래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문과졸업기념(1941)으로 자신이 고른시 19편을 77부 한정판으로 출판하기 위하여, 우선 자필로 3부를 만들어 스승인 이양하(李敭河) 교수와 후배 정병욱(鄭炳昱)에게 각각 한 부씩 주고, 한 부는 자신이 간직하였다고 한다.

자료=한국민족문화대백과. 왼쪽이 윤동주이다.

그때 이양하 교수가 일제검열의 통과 여부를 걱정하여 시집 출간을 만류하여 보류되었던 것 중, 윤동주의 것과 이양하 교수의 것은 유실되고, 정병욱에게 준 원고만 남아 광복 후 정병욱의 주선으로 유고 31편을 모아 처음 간행하였다 한다.

자료=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현재 정병욱 가옥. 사진=한재만
현재 생가에 적혀있는 정병욱 생가 가옥 비문. 사진=한재만

윤동주의 유고 시집 중 한 권만이 일제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광양 정병욱 선생의 가옥”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란다. 윤동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1948년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한다. 이후 윤동주의 10주기를 맞아 1955년 정음사에서 간행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아우 윤일주(尹一柱)의 ‘선백(先伯)의 생애’ 가 첨가 수록되었다 한다.

『윤동주』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1917년 12월30일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으로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가을에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귀향 직전,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송몽규와 함께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생을 마쳤다.

『정병욱』은 1922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백영(白影).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부산대학교·연세대학교 교수를 거쳐 모교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27년간 재직하면서 한국 고전문학 분야에 탁월한 연구업적을 쌓았다. 주전공인 고전시가를 비롯하여 고전소설·판소리·한문학·서지학에 걸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사망년도는 1982년이다.

현재 정병욱 가옥내 당시 집필도구와 유고품 들. 사진=한재만

정병욱은 학술원 정회원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프랑스의 콜레지 드 프랑스의 초빙교수로서 한국 고전시가와 문학에 대한 논문발표 및 강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한국문학’ 항목집필, 미국·프랑스·일본·스위스 등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하여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한국 문학을 해외에 소개·선양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전해진다. 정병욱의 상훈은 1967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1979년 외솔상, 1980년 삼일문화상을 받았다.

정병욱 가옥 옆 담벽에 부착된 유고관련 자료들이다. 사진=한재만

올 여름 유난히도 무덥고 습했던 날들 끝 무렵이다. 오는 가을 화창한 날에 시를 품어 빛을 전한,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을 한번 쯤 다녀 가시길 추천한다.

한재만 기자
한재만 기자
광양 P사 32년 근무, 정년퇴직. 취미활동 :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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