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남대문이 있다면, 광양시에는 ‘햇살문’이 있습니다. 광양(光陽)은 빛 광(光), 볕 양(陽) 자를 씁니다. 광양이 빛의 도시란 뜻입니다. 햇살은 그러한 광양의 시명(市名)과 잘 맞는 순수 우리말 입니다. 광양시만의 서체인 ‘해살체’가 개발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광양에 ‘햇살문’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광양의 새로운 상징, ‘햇살문’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싣는 순서]
1편 : 성황공원 햇살문
2편 : 햇살문 비문
3편 : 성황공원 가는 길
4편 : 새로운 신도시 성황
광양시는 ‘가족형 복합테마공원’ 성황공원 조성 후 성황공원 정상을 중심으로 동서를 잇는 고갯마루에 출입문을 설치, ‘햇살문’으로 명명했다.
햇살문 벽면에는 조선조 영조(英祖)시대 탕평정치의 핵심관료로 활약한 인물로 전해지는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성황(城隍)마을을 지나가면서 예찬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朝鮮之 全羅道요, 全羅之 光陽이며, 光陽之 骨若이요, 骨若之 城隍이라」
(조선지 전라도요, 전라지 광양이며, 광양지 골약이요, 골약지 성황이라)
광양시지(光陽市紙) 제11편 광양의 마을, 제8장 골약동 마을편(1053~1054p)에 기록된 문화유산 ‘유적 어사(御史) 박문수(朴文秀)의 광양예찬’ 일화가 소개돼 있다.
이 일화에 따르면, 시기는 영조3년(1727년) 3월 중순쯤, 어사 박문수는 봄철이라 온몸이 나른하고 출출하기도 해 국밥에 곁들여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려고 ‘서낭댕이’ 주막집에 들렀다. 서낭댕이란 ‘서낭당’의 방언으로, 토지와 마을을 지켜 준다는 신을 모신 집을 말한다.
어사가 주막집 마루 한쪽에 걸터 앉으려는데, 마침 곁에 입심 좋은 이 고을 촌노들 서너명이 있자 이곳 민생도 살필 겸 이들과 수인사를 나눈 후 막걸리를 주고 받는다. 그 유명한 ‘광양예찬’ 일화가 어사의 입담을 통해 슬슬 나오게 됐다고 한다.
어사는 “호남은 기후가 고르고 오곡이 풍성하여 음식문화가 으뜸인 고장이며, 광양현은 농산∙임산∙수산∙광산∙양잠이 으뜸인 고을이라, 서낭댕이는 주위에서 농산물이 풍부하게 나고, 또한 앞에서는 김을 비롯하여 해산물이 풍부하게 나며, 뒤에서는 임산물이 많이 나니, 이곳이 제일 살기 좋은 고장이라”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10일쯤 지나 어사 박문수가 순천부 암행감찰 시에 순천부사 오길수의 밀부 탄핵사건이 이곳 골약방까지 알려지자 ‘광양예찬’의 장본인이 어사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제11편 특기사항(1056p)편에는 “옛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이곳에 이르러 ‘全羅之光陽 光陽之骨若 骨若之城隍’이라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밖에, “마을주민들이 그 뜻을 기리고 자긍심을 갖는 한편,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자는 취지로 이곳 마당터에 ‘조선 제일향(朝鮮 第一鄕)’이란 표지석을 세우고, 주민 휴식처가 되는 정각(亭閣)을 건립해 ‘어사정(御史亭)’이라 부르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