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에는 마로(馬老), 통일신라시대에는 희양(曦陽), 고려시대부터는 광양(光陽)으로 불려왔다. “마로”는 우두머리, “희양·광양은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광양 고을이름은 서기 940년(고려태조 23)에 희양현(晞陽縣: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등 주요 문헌에 기록된 지명)을 광양현(光陽縣)으로 고친이래 지금까지 1,084년간 “광양(光陽)지명을 사용해 오고 있다.
중마동(中馬洞)은 1989.01.01일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장소가 동광양시로 승격됨에 따라 행정운영등의 설치를 위해 그전의 중동(中洞)과 마동(馬洞)의 첫 글자를 따라서 “중마동(中馬洞)”이라 하였다 (마을편 제9장 중마동 1,085p)
중동(中洞)은 본래 골약면 지역이었는데 중동지역내 자연마을인 중촌(中村)이 위치상 용소와 길도 마을의 한복판이 되므로 지형적 여건을 고려하여 그대로 중촌(中村)이라 한데서 유래된 지명이고, 마동(馬洞)도 본래 옛 골약면 지역으로 마흘(馬屹)∙애밑등∙와우(臥牛)∙사동(寺洞)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마흘(馬屹)과 사동(寺洞)의 글자를 따서 “마동(馬洞)”이라 하였다.
“중마(中馬)고을” 의미는 두개 동(洞)이 복합적으로 두 글자를 합쳐 명명(命名)한 지명이라 여러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직역하면 ‘복판으로 달리는 말(馬)’을 뜻하고, 고을지명으로 뜻풀이 한다면 ‘날로 번창하는 고을’ 또는 ‘중심고을’이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양시는 역사적인 마을 “중마동(中馬洞)의 분동(分洞)을 두고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 분동이 된다면 본래의 이름으로 되돌려 주면 어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