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기술센터 전경. 사진=신협순

농업기술센터 농식품유통과에는 농촌자원팀이 주관하는 4개의 연구회가 있다. 이들 연구회는 우리 옷 연구회, 우리 음식 연구회, 우리 차 연구회, 그리고 6차 산업 연구회로 구성돼 있다. 각 연구회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고,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기술보호과가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학습단체로 결성한 연구회가 1958년 시작됐다. 이 연구회는 의식주 생활개선 활동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학습단체로 출발했는데, ‘생활개선 구락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는 농촌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1957년, ‘농사교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생활개선’이라는 목표 아래 농촌의 의식주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러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1958년 2월에는 생활개선 전문기술원 채용 시험이 실시됐다. 이를 통해 농사원(현 농촌진흥청) 소속 최초의 가정교도원(현 농촌지도사)이 배출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농업기술센터 각 연구회는 농업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농촌의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옷 연구회는 전통 의류 보존과 현대화, 우리 음식 연구회는 전통 음식의 계승과 발전, 우리 차 연구회는 전통 차 문화 보급, 그리고 6차 산업 연구회는 농업의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정 교도원은 농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의식주 및 보건 위생, 육아 등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개선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농촌 생활은 열악한 환경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이러한 교육과 지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초기 가정 교도원 사업은 여러 문제로 인해 어려움에 부딪혔다. 가부장 중심 가족 질서 속에서 여성 지위는 낮았고, 여성의 외부 활동에 대한 남성의 이해 부족과 보수적인 생활태도도 큰 장애물이었다. 또한, 관련 지방단체의 협조가 미흡해 사업 진행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생활 개선 필요성을 절감한 농촌 여성들에 의해 생활개선구락부가 조직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후 복구와 경제 재건에 주력하고 있었고, 농촌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춘궁기에는 양식이 끊겨 보릿고개를 겪는 상황에서 식량 증산은 시급한 과제였다.

생활개선구락부는 농촌 여성들의 학습 단체로서, 생활 개선사업을 실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요 과제로는 식량 부족 해결을 위한 7분 도미 먹기와 분식 장려, 영양학적인 균형식 장려, 간이 작업복 보급, 우물, 변소, 부엌 개량 등이 있었다. 이들은 먼저 배우고 실천하면서 마을에 보급하는 일을 통해 생활 개선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1960년대 농촌 생활개선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농사일을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평상복을 농작업복으로 개량하고, 새로운 아동 활동복을 만들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재봉틀은 드물어서, 교육이 있는 날이면 재봉틀을 가진 회원이 직접 재봉틀을 해당 교육 장소로 가져와야 했다.

농촌 여성들에게 가사와 농사, 그리고 육아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요즘과 같은 보육 시설이 없던 환경에서는 아이들을 옆에 두거나, 심한 경우는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그기도 했다. 농번기에는 탁아소를 운영하여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77년 7월 8일, 생활개선 구락부는 국무총리령 141호에 의해 부녀 교실, 새마을 부녀회, 가족계획 어머니와 함께 새마을 부녀회로 통합되어 새마을 부녀회 생활개선부로 활동하게 됐다.

이들은 식품가공, 저장 및 각종 요리법의 시연과 교육을 진행하고, 방송 전시와 영화, 슬라이드를 상영했다. 농촌 오지 마을로 찾아가 현장에서 요리법을 교육할 때에는 회원 주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촌 상황은 단순 경작에서 농가소득 증대를 목표로 하는 영농 중심으로 변화됐다. 이 시기에 많은 청장년층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농촌 인구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농촌 여성은 영농의 주역으로서 그 역할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1994년에 사단법인 생활 개선회가 설립되면서 농촌 여성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생활 개선회는 농촌 여성 농업인의 자율적인 활동 기반을 마련하고, 농업인의 건강과 농촌 환경 보호 활동을 확대해 나갔다. 1997년에는 생활개선중앙회로 명칭이 변경되며 농식품 가공, 농촌 관광, 체험 등 다양한 농촌 자원을 활용해 농촌 소득 증대를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2000년 이후 농촌 여성은 농촌 경제의 주체로서 우뚝 서게 됐다. 농촌 여성 일감 갖기 사업의 추진과 농산물 가공 기술 향상으로 농가 소득이 증대됐고, 여성 농업인의 전문 능력 배양을 위한 교육과 지원이 강화됐다.

2015년에는 농촌 융복합사업(제6차 산업)이 공표돼 농산물을 활용한 식품 제조, 가공, 관광 및 체험이 결합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에는 생활 개선 회원이 재배 및 생산한 농식품의 유통 전문 브랜드 ‘농맘’이 인증 마크를 획득하며 국민 건강을 선도하는 역할을 자부하게 됐다.

사진 및 자료=한국생활개선중앙협의회(한국생활개선회 195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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