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운(上雲) 마을 문화유산①] 국보103호 쌍사자 석등

국보 제103호 쌍사자 석등과 보물 제112호 삼층 석탑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
국보 제103호 쌍사자 석등(위 왼쪽)과 보물 제112호 삼층석탑(위 오른쪽)이 마주보고 있다. 사진=한재만
쌍사자 석등과 삼층석탑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광양시 옥룡면 상운(上雲) 마을엔 문화유산·유적으로 중흥산성, 중흥사, 쌍사자 석등(모조품), 3층 석탑, 석조 지장보살 반가상 등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들이 있다. 1962년 국보 제103호로 지정된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은 1931년 일제강점기에 광양을 떠나, 1932년 경복궁 자경전 앞에 이건(移建)됐고, 해방 이후 1959년 경무대, 1960년 덕수궁으로 옮겨졌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으로 옮겨 전시되다 1990년부터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 광양시는 시민들과 함께 쌍사자 석등 제자리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광양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쌍사자 석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싣는 순서]
1편 국보 제103호 쌍사자 석등(雙獅子 石燈)
2편 보물 제112호 삼층 석탑
3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2호 석조 지장보살 반가상
4편 국보 제103호 쌍사자 석등 수난사

광양시지 제3장 옥룡면 제11편 마을지 상운마을(374p)편에 중흥산성이 소개 된다. 1999년 12월 3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된 중흥산성은 통일신라시대 산성이다. 동쪽에 해발 256m 두리봉(斗里峰)이 있고, 서쪽으로 해발 406m 철암박이 산이 있다.

산성 전체가 천연 요새로, 능선을 따라 흙으로 쌓아 만든 토성이다. 산성 둘레가 약 4km로 광양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성으로, 포곡형을 하고 있다. 중흥산성내 옥룡면 운평리 산 23번지에 중흥사가 있다. 중흥사 연혁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일부 학자들은 현갑사(玄岬寺)→웅사(熊寺)→중흥사(中興寺)로 절 이름이 변천됐다고 보기도 한다.

현재의 절 이름인 중흥사는 근래 사찰을 중창하면서 중흥산성 내에 있다는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경내에는 통일신라말 9세기에 건립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무렵부터 사찰이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는 내용이 전해 지기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소규모 건물들이 몇 번 건립되기도 했다. 1963년 하태호(河太鎬) 씨가 다시 중건했는데, 현재 모습은 198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중창해 갖춘 건물이다.

중흥사 경내에는 1962년 국보 제103호로 지정된 쌍사자 석등이 있었다. 이 석등은 쌍사자가 받치고 있는 석등으로, 조각술이 우아하고 정밀하다. 순백의 석질에 두 마리의 사자가 연화석(蓮花石) 위에 버티고 서로 가슴을 맞대어 머리를 들어 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이들이 통일신라시대, 한 개의 돌로 조각된 2.5m 높이 석탑이다.

석등(石燈)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고 해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한다.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 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을 이루는 받침 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 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 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쌍사자 석등은 큼직한 연꽃이 둘러진 아래 받침돌 위로 중앙 기둥 대신 쌍사자를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두 마리의 사자는 사실적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돼 국내 5개 석등 가운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함께 국보로 지정됐다. 이 시기 석등에 표현된 쌍사자는 모두 뒷발로 밑의 복련석에 버티고 마주 서서 앞발을 들어 위로는 앙련석을 받치고 있는 형태다. 법주사 석등에서는 장중함을, 중흥산성 석등에서는 경쾌함을 보이고 있다.

한재만 기자
한재만 기자
광양 P사 32년 근무, 정년퇴직. 취미활동 :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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