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 ② 고인돌 마을서 만난 국밥 한 그릇

제2회: 고인돌 마을에서 만난 온기, 시대를 이어온 국밥 한 그릇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삶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화려한 진미가 아니라,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는 정갈한 밥상이다. 광양의 마을과 골목에서 마주한 밥상을 통해 우리 시대 시니어들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기록해 본다.

취재를 하다 보면 밥때를 놓치기 일쑤다.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고, 수첩의 기록을 마칠 때쯤에야 뒤늦은 허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때 만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지역의 속살을 만나는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일부러 찾아간 소문난 맛집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한 밥상을 기록하고자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하는 음식,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리고 말없이 오가는 정이 있는 풍경을 담아본다.

보릿고개의 기억을 넘어 건강을 걷다

아침을 일찍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광양읍 용강리 기두·용두마을 일대와 뒷산 정상의 마로산성을 오르내렸다. 고인돌이 남아 있는 마을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오후 1시를 향하고 있었다.

시니어 일자리 3년 차인 기자에게 이 길은 단순한 취재길이 아니다. 신체적으로 움직이며 현장을 누비는 일은 건강보험공단에서도 권장할 만큼 시니어의 활력에 큰 도움이 된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나면, 시장기는 평소보다 일찍, 그리고 정직하게 찾아온다.

처음 떠올린 메뉴는 보리밥이었다. 농촌 출신 시니어들에게 보리밥은 애증의 음식이다. 한 지인은 어릴 적 가난 때문에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보리밥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너무 아파 지금도 보리밥을 보면 마음부터 닫힌다고 했다. 배고파 울며 넘던 그 ‘보릿고개’의 기억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보리밥은 성인병 예방을 위한 귀한 건강식이 되었다. 읍내에서 이름난 노포 보리밥집을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그곳엔 영업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그동안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주었을 공간이 사라진 것을 보니 아쉬움과 함께 허기가 더 짙게 밀려왔다.

“수천 년을 건너뛴 삶의 터전, 과거와 현대가 마주하다” 용강리 마을 길목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선사시대 고인돌 너머로 현대의 아파트 단지가 솟아 있다. 수천 년 전 이 땅에 삶의 뿌리를 내렸던 고인돌 사람들의 숨결이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나란히 호흡하고 있는 풍경이다. 사진 = 문성식
“기다림은 멈추고 추억만 남은 자리” 읍내 골목을 지켜오던 노포 보리밥집의 굳게 닫힌 문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인사가 붙어 있다.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주던 구수한 보리밥 향기는 이제 기록과 기억 속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사진 = 문성식

세대를 아우르는 국밥의 미학

결국 발길을 돌려 근처 국밥집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식당 안은 활기가 있었다. 모듬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머리고기와 내장, 순대가 고루 섞인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다.

따로국밥의 묘미는 밥을 한꺼번에 말지 않는 데 있다. 국물에 밥을 조금씩 말아 먹어야 쫀득한 밥알의 식감이 살아난다. 밥을 조절하며 천천히 국물을 음미하는 방식은, 속도를 줄이며 살아가는 시니어의 삶의 방식과도 닮아 있다.

식당 한쪽에는 검은색 단체복장을 한 고등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국밥을 비우고 있었다. 80대 안주인이 “많이들 묵어라, 부족하면 말하고 잉” 라며 건네는 투박한 사투리 속에 정이 묻어났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국밥이 ‘소울 푸드’라는 사실이 새삼 반가웠다.

“누구에게나 열린 따스한 안식처, 골목 안 국밥집” 보리밥집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찾아든 국밥집의 전경.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간판 아래로 새어 나오는 구수한 육수 냄새가 취재에 지친 시니어 기자의 발길을 포근하게 잡아끈다. 사진 = 문성식
“취재길 위에서 만난 든든한 조력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정겨운 불빛을 밝히고 있는 국밥집 전경. 화려한 인테리어는 없어도 뚝배기마다 담긴 진심이 허기진 이들의 하루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된다. 사진 = 문성식

고인돌 사람들과 나누는 공동체의 온기

국밥을 넘기며 잠시 사유에 잠겨본다. 아까 보았던 용강리 고인돌 마을 사람들, 즉 선사시대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아마도 그들 역시 사냥과 채집을 마친 후, 커다란 솥 앞에 모여 앉아 뜨거운 음식을 나누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고인돌을 세우던 거대한 노동 뒤에 나누었을 그 공동체의 밥상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이 국밥 한 그릇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국밥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리고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세대를 관통하며 사람을 한 식탁에 앉히는 힘이 있다.

취재를 마친 뒤 마주한 국밥 한 그릇은 단순한 열량의 보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 하루의 기록을 조용히 갈무리해 주는 위로였으며, 이웃과 온기를 나누는 작은 잔치였다.

오늘의 밥상: 광양읍 소재 국밥집 (모듬국밥 10,000원)

주변 볼거리: 마로산성, 용강리 기두·용두 고인돌군

문성식 기자
문성식 기자
섬진강과 백운산 매화꽃 피는 광양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인간존엄과 창작에 관심이 있어 사회복지와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현재는 광양시니어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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