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광양시 중심고을··· 중마동(中馬洞) 옛 마을터, 분동(分洞)위기 처하다

중마동(中馬洞)은1989.01.01일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장소가 동광양시로 승격됨에 따라 행정 운영등의 설치를 위해 그 전의 중동(中洞)과 마동(馬洞)의 첫 글자를 따서 중마동(中馬洞)이라 하였다(광양시지 제9장 중마동, 1085p)

‘중마(中馬)’고을 의미는 두개 동(洞)이 복합적으로 두 글자를 합쳐 명명(命名)한 지명이라 여러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직역하면 ‘복판으로 달리는 말(馬)’을 뜻하고, 고을지명으로 뜻 풀이 하면 “날로 번창하는 고을·중심 고을”이란 의미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9.10.09 전라남도 광양시 중마중앙로 162 인근에서 중마동 “불로(不老)·세동(細動)·행정(杏亭)”마을 유래비 제막식을 진행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정현복 광양시장, 정인화 국회의원, 김성희 시의회 의장등 내빈과 옛 마을(불로·세동·행정) 주민 100여명이 참석하여 옛 고을 추억을 되새기며, 마을 유래비 제막식 행사를 가졌다. 건립사업은 사업비 3,500만원(도비 3,000만원, 시비 500만원)이 투입되었고, 3개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표지석을 세웠다.

옛 마을을 기리는 마음을 담은 “석비 앞면”에 적혀 있는 글이다.  옛날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손꼽히던 “불로(不老)·세동(細洞)·행정(杏亭)”마을은 1930년 간척지가 되기 전까지 세동·행정마을앞 까지 바다였었다. 전형적인 농경사회로 벼·보리 농사에 의존하여 왔다. 겨울철에는 해태양식 등으로 많은 소득을 올리며, 생활해 왔으나 1980년 중반이후 광양제철소와 컨테이너부두가 건설되면서 산업화·도시화로 지금은 옛 마을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없는 상태이다. 비록 옛 마을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당시에 서로 상부상조하며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살았던 옛 향수를 기리고,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고향을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곳에 표지석을 세워 기념하고자 한다. 불로·세동·행정마을 주민 여러분! 항상 고향마을을 기억하며 성취하는 삶을 영위하기를 기원합니다.

옛마을터 석비문 – 정면. 사진=한재만
옛마을터 석비문 – 후면. 사진=한재만

 

옛 마을을 기리는 마음을 담은 석비 뒷면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리산의 한줄기가 남으로 뻗어 내려와 광양의 주산 백운산을 만들고, 남으로 내려와 가야산에 멈추어 광양만을 굽어 본다. 가야산의 한 줄기가 서남으로 내려와 현충탑 봉우리를 만들고 그 아래 동쪽 끝에 행정(杏亭)마을이 있었다.

“불로(不老)마을”은 1700년대 중반에 영천이씨(永川李氏) 암곡공파 후담이 옥곡면 묵백에서 이거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처음에는 마을의 주변형세가 부처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불무동·불무댕이”라 하였다가 자손이 귀해지자 손이 끊기지 않고 오래사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로(不老)로 하였다고 전해온다. 50여호의 영천 이씨(永川李氏)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기계 유씨(杞溪兪氏), 밀양 박씨(密陽朴氏), 전주 이씨(全州李氏), 순천 박씨(順川朴氏), 광산 김씨(光山金氏), 이천 서씨(利川徐氏)가 함께 살았다. 현재 ‘중앙초등학교와 동광양중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곳이 불로마을 옛터이다.

“세동(細洞)마을”은 1680년경 전주 이씨(全州李氏), 이영(李泳,1650년생)장군이 순천에서 이곳으로 처음 입촌하였다고 하며, 본래마을 명칭은 세이동이라 불리어 오다가 세월이 흘러 세동(細洞)이라 불리었다. 이영 장군 이거이후 순천 박씨(順天朴氏), 광주 정씨(光州鄭氏), 밀양 박씨(密陽朴氏), 인동 장씨(仁洞張氏), 영천 이씨(永川李氏), 달성 서씨(達成徐氏), 려양 진씨(驢陽陳氏)가 함께 살았다. 현재 마을 중앙에는 중앙로가 가로지르고 있으며, ‘서쪽은 우봉 아파트, 동쪽은 표지석이 세워진 이 곳’  이 옛 세동마을 터이다.

“행정(杏亭)마을” 은 영천 이씨(永川李氏)와 이천 서씨(利川徐氏)가 처음 입촌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마을 입구에 큰 은행나무가 자리잡고 있어서 행정마을이라 불리었다고 전해오며, 전주 이씨(全州李氏), 광산 김씨(光山金氏), 진주 강씨 (晋州姜氏), 강릉 유씨(江陵劉氏)가 함께 살았다. 옛날 불로마을 남쪽, 지금의 광양 시 중심 시가지 광양시청이 옛 행정마을 터이다.

날로 번창하는 고을 “행정마을”터에 광양의 상징인 ‘광양시청’이 자리잡고 있고, 세동마을”에는 중마동 중앙로가 관통하고, 우측(右側)에 마동 유원지를 품고 있으며, 불로마을”은 중앙초등학교와 동광양 중학교가 자리잡은 교육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2024년 4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의하면 전라남도 광양시는 152,770명으로 전월대비 9명 감소하였으며, 증가한 동면은 골약동 84명 증가한 7,892명, 광양읍 7명 증가한 48,065명, 중마동이 8명 증가한 57,556명으로 광양시 전체인구의 37.7%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치는 주민등록상 인구 통계이며, 실제 거주 인구수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한재만 기자
한재만 기자
광양 P사 32년 근무, 정년퇴직. 취미활동 :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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