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시 골약동은 오래전부터 특별한 땅이었다.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팔도를 순행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앞문을 열면 고기와 소금이 들어오고, 뒷문을 열면 임산물과 나무가 들어오는 곳”이라며 조선 팔도 가운데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 칭송했다 전해진다. 그가 남겼다는 말, “조선지 전라요, 전라도지 광양이요, 광양지 골약이요.” 한 문장 안에 이 고장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골약(骨若)이라는 지명은 예사롭지 않다. 1983년 편찬된 광양군지에 따르면, 강원도 명산 금강산의 암석과 이곳 가야산의 암석이 서로 닮았다 하여 ‘같을 약(若)’ 자를 붙인 데서 비롯됐다. 고려시대에는 골약리부곡(骨若里部曲)으로 불렸고,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에 골약방(骨若坊)으로, 1895년 고종 32년에 골약면으로 이어지며 600년을 넘는 지명의 역사가 이 땅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름 하나에도 역사가 숨 쉬는 고장이다.
그 땅이 지금 다시 뜨겁다. 2022년 3월 4,363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현재 1만2,900명으로 불어났다. 성황동과 황금동 일대에 광양푸르지오 더퍼스트·광양 센트럴자이·더샵프리모·광양푸르지오센트럴·한라비발디센트럴파크·더샵광양베이센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잇달아 들어서며 이뤄진 변화다. 성황스포츠센터, 건강가정생활지원센터, 골약동 주민센터 등 생활 인프라도 함께 갖춰지며 골약동은 광양 개발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 됐다.
여기서 주목할 숫자가 하나 있다. 골약동의 평균 연령은 33.8세다. 출산율은 전남 최고 수준으로 전국 상위권에 든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골약동은 거꾸로 젊어지고 있다.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의 배후 부지라는 지리적 이점과 산업 기반이 젊은 인구를 불러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결과다.
앞으로의 그림도 선명하다. 구봉산 관광단지 조성 사업이 완성되면 정상부에 체험형 타워와 어린이 테마파크, 골프장·리조트가 들어서며 광양 관광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문수가 칭송했던 ‘살기 좋은 땅’이 600년이 지나 이번에는 산업과 관광,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좋은 땅의 기운은 이어진다. “조선지 골약이요”라는 옛말이 오늘의 골약동 앞에서 다시 한번 울림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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