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계산 겨울 산행' 겨울이지만 땀이 맺힐 만큼 가파른 백계산 오름길. 산행 뒤 따뜻한 한 끼가 더욱 절실해진다. 광양시 옥룡면에 위치한 백계산(해발 505.8m)은 백운산의 지맥으로 옥룡사지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거대한 동백나무 군락지를 품고 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뒤로 백운산(1,222m)이 소백산맥의 끝자락이자 호남정맥의 상징적인 제일봉으로 지리산과 섬진강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취재는 늘 길 위에서 이어진다. 오늘은 백운산 자락의 백계산을 오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한겨울인데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하산하니 젖은 옷자락 사이로 한기가 스며든다. 이럴 때 시니어에게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은 보약과도 같다. 예부터 밥상을 ‘약상’이라 불렀다. 밥이 곧 약이라는 뜻이다.

발걸음은 인근 도선국사마을로 향했다.

‘도선국사마을 입구 삼거리 느티나무’ 400년 세월을 지켜온 마을 보호수 느티나무. 산골 마을의 시간을 묵묵히 품고 있다. 사진=문성식
‘도선국사마을 안내판’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농촌전통테마마을이다. 도선국사마을은 인근에 옥룡사지를 비롯한 백운산 자연휴양림 등 휴식처가 있다. 물맛이 좋아 원님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다는 사또 약수터가 있어 시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도자기, 천연염색, 공예, 다도, 향토음식, 떡메치기 등 상시 프로그램 외 제다교육, 키위, 자두, 감따기와 고사리, 고구마 캐기 등 계절별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체험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문성식

마을 입구에는 수백 년 세월을 버틴 느티나무가 서 있다. 광장 주차장 쪽에는 약수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안내판에는 체험장과 음식점이 정갈하게 소개돼 있다. 산행과 탐방 뒤 들르기 좋은 조건을 갖춘 마을이다.

그중 눈에 띈 곳이 ‘선은손두부’였다. 개인 주택을 고쳐 만든 소박한 식당이다.

‘선은손두부 외관’ 도선국사마을 골목 안에 자리한 선은손두부. 가정집을 개조해 따뜻한 분위기를 더한다. 사진=문성식
선은손두부 식당 내부’ 광양시 옥룡면 상산길 29-4 선은손두부(인절미체험장) 에 위치한다. 영업시간은 10:00-17:00, 연락처는 061-762-5159 주자는 도선국사마을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하다. 사진=문성식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리가 거의 다 찼다. 메뉴판에는 ‘식사메뉴 2인 이상 주문’이라는 붉은 글씨가 보였다. 혼자 온 손님이라 조심스레 물었다. “혼자인데 가능할까요?” 사장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예, 앉으시지요.” 그 한마디가 식은 몸을 먼저 데워주는 듯했다.

젊은 부부가 식당을 꾸려가고 있었다. 남편은 홀과 서빙을 맡아 분주히 움직이고, 아내는 주방에서 두부를 다듬는다.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작업을 마친 인부들, 여행객들, 부모를 모시고 나온 가족들로 자리가 가득 찼다. 몇몇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주문한 음식은 순두부정식 1인분. 잠시 뒤 상이 차려졌다.

‘순두부정식 한 상’ 갓 만든 순두부와 정갈한 반찬. 자극 없이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사진=문성식
‘점심시간 식당 내부 풍경’ 도선국사마을 ‘선은손두부’ 내부 모습. 인근 작업 인부와 여행객, 가족 단위 손님들이 한 상을 마주하며 식사하는 장면이 정겹다. 사진=문성식

순두부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리며 고소함을 남긴다. 짭조름한 간장을 살짝 얹으니 풍미가 또렷해진다. 자극 없이 순한 맛이 속을 편안하게 감싼다. 소화력이 약해지는 시니어에게 부담이 적고, 단백질 보충에도 알맞은 메뉴다.

“매일 이렇게 손님이 많습니까?”

“아닙니다. 둘이 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립니다. 오늘은 밥이 모자라 새로 하느라 더 늦었네요.”

그의 말에서 음식에 대한 책임감이 묻어난다.

도선국사마을 주변에는 백운산자연휴양림, 옥룡사지, 운암사,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등이 자리해 있다. 산과 숲, 문화유산을 둘러본 뒤 마을 식당에서 한 끼를 나누는 동선이 자연스럽다.

지인 한 분이 병원에 입원한 뒤 말했다. “이제는 밥을 맛으로 먹지 않고 약으로 먹는다.” 건강은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규칙적인 식사와 균형 잡힌 영양이 결국 삶의 기반이 된다.

산을 오르내린 뒤 만난 두부 한 상. 화려하지 않지만 속을 다스려주는 한 끼다. 오늘도 취재 길 위에서 깨닫는다. 시니어의 건강을 지키는 밥상은 멀리 있지 않다. 겨울 산 아래, 따뜻한 두부 한 그릇 속에 있다.

  • 오늘의 밥상: 전남 광양시 옥룡면 상산길 29-4 선은손두부
  • 취재 음식: 순두부정식
  • 주변 볼거리: 백운산자연휴양림,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 운암사, 서울대 남부학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