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 백계산 선각국사 도선의 부도와 탑비가 동백꽃으로 둘러 쌓여 있다. 사진=한재만
옥룡사지 도선국사(道詵國師)와 동진대사(洞眞大師) 부도와 석비. 사진=광양시. 시계 정시방향 선각국사 도선 부도, 2사방향 선각국사 도선 탑비, 시계 4시방향 선각국사 도선의 수제자 통진대사 탑비, 8시방향 통진대사 부도이다. 사진=광양시
백계산 옥룡사 선각국사 도선 비명. 사진=한재만
왼쪽이 동진대사 부도, 안쪽이 선각대사 도선 부도이다. 사진=한재만
옥룡사지 소망의 샘, 이 소망의 샘 우물은 제16대 노무현 대통령께서 2001년 8월13일 이곳의 물을 마시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하여 ‘소망의 샘’ 으로 불리게 되었다며, ‘땅의 기운과 숯(정화)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라 전해진다. 사진=한재만

광양시는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넘어, 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백운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이 땅에는 삼국시대 성곽부터 통일신라 사찰, 장인의 숨결이 깃든 무형유산, 천연기념물 숲까지 다채로운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광양 곳곳에 남아 있는 국가지정유산을 살펴보고, 우리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6편의 연재를 마련했습니다. 각 편에서는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담은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광양의 새로운 매력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싣는 순서]

1편 : 광양마로산성

2편 : 광양옥룡사지

3편 : 천연기념물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

4편 : 국가무형유산 장도장(粧刀匠)·보유자 박종군

5편 : 광양읍수와 이팝나무, 유서깊은 마을 숲

6편 : 국가지정유산·중흥산성 삼층석탑

광양 옥룡사지(光陽 玉龍寺址)는 통일신라시대 풍수지리사상의 효시인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 827~898)이 864년에 중창한 것으로 전하는 옥룡사 옛터이다.

광양 백계산(해발 505.8mh)에 있는 옥룡사는 8세기초인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선승(禪僧)이자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의 대가로 알려진 선각국사(先覺國師) 도선(道詵)이 35년(864-898) 동안 머물다가 입적한 천년의 법 맥이 깃들어 있는 곳이며, 35년간 머물면서 수백명의 제자를 양성한 유적이다.

등록된 아래자료는 2019~2023년까지 진행된 안내판 개선사업을 바탕으로 작성된 국가유산 등재글이다,

옥룡사지(玉龍寺址)는 용(龍)아홉 마리가 사는 큰 연못이었다 한다. 용들이 사람들을 괴롭히자, 도선국사가 용들을 쫓아내고 터를 닦아서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도선국사는 이곳에서 35년간 머물며 제자를 양성하고 입적했다 한다. 옥룡사는 조선후기까지 유지됐으나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사됐다. 절 동편에 모여 있던 승탑과 탑비들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모두 파손됐다고 한다.

옥룡사지는 현재까지 총 다섯차례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건물지 17동과 석축 4개소가 확인됐고, 승탑 부재, 탑비 파편,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또한 발굴조사 중 인골이 담긴 석관이 부도전지에서 발견됐다. 이 인골은 도선국사의 것으로 추정하며, 당시 승려들의 2차장(洗骨葬) 장례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옥룡사지는 해발 1217.8mh인 백운산의 한 지맥으로 뻗은 해발 505.8mh의 백계산 남쪽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절터 주변에는 도선이 옥룡사를 중건하면서 함께 조성했다는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489호)”이 있다. 동백나무숲은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 꾸몄으며, 도선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동백나무는 천년의 역사를 지나 오면서 깊이 뿌리내려져 현재는 약 7천여 그루가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는 옥룡사지이다. 또한 제자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차 밭을 일궜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도선(道詵)은 827년 전남 영암에서 출생하여 864년부터 35년간 옥룡사에 주석(駐錫)했다.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898년에 입적했다. 고려 인종(1122~1146)때 선각국사로 추봉(追封)됐다고 한다.        주석(駐錫)은 승려가 포교하기 위하여 어떤 지역에 한 동안 머무름을 뜻한다.

도선국사실록(道詵國師實錄)편에 도선은 국사의 어릴 때 이름이고, 자는 광종(光宗), 법호는 경보(慶寶), 연기(烟起)는 별호이다.

옥룡사(玉龍寺)는 조선후기에 화재로 타 버려 폐사됐다. 조사결과 건물터와 명문비 조각90여 점을 찾았고, 도선국사의 것으로 생각되는 유골과 관을 발견하였다. 이는 당시 고승들의 장례 풍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라 평가받는다.

도선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동백나무는 천년의 역사를 지나 오면서 깊이 뿌리내려져 현재는 약 7천여 그루가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는 “옥룡사지” 이다. 그 뒤 수제자인 통진대사(洞眞大師) 경보(慶甫), 지문(志文) 등이 머물면서 법맥을 이었고, 신라 말∼고려 초에 건립된 쌍비와 쌍탑(부도)이 남아 있다. 1878년(고종15년)에 화재가 나서 천년 이상 밝혔던 법 등은 꺼지고, 사역은 점차 폐허화 했다.

부도탑’은 ‘부도’와 ‘탑’을 합친 말로, 부도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이다.                             탑비는 열반하신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부도: 승려들의 사리나 유골을 넣은 석종(石鐘)

불교에서 쌍탑(雙塔)은 주로 깨달음의 진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상징하는 건축양식이다. 쌍비(雙碑)는 고승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사상적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한다.

옥룡사지 오르는 중간부에는  “소망의 샘”에서 샘이 솟고 있다. 이 소망의 샘 우물은 제16대 노무현 대통령께서 2001년 8월13일 이곳의 물을 마시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하여 “소망의 샘” 으로 불리게 되었다며, 땅의 기운과 숯(정화)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라 전해진다.

옥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다. 선승(禪僧)이자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진 선각국사(先覺國師) 도선(道詵)이 864년부터 898년까지 35년 동안 주석하고서 입적했다. 그 뒤 통진대사(洞眞大師) 경보(慶甫), 지문(志文) 등이 머물면서 법맥을 이었고, 신라 말∼고려 초에 건립된 쌍비와 쌍탑(부도)이 남아 있다.

쌍비(雙碑) 의미와 유래이다. 비(碑)는 주로 승려의 업적을 기리거나 사찰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세워진다. 특히 고려 시대에는 고승들의 탑(부도)과 함께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塔碑)가 많이 세워졌다 한다.  또한 쌍비(雙碑)는 한 사찰이나 특정 인물과 관련된 두 기의 비석을 의미하며, 주로  승려의 행적을 기록한 ‘승탑비(僧塔碑)’로 나타낸다. 고승의 도덕과 업적을 기리고 그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승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쌍비가 유명한 대표적인 사례는 “전라남도 광양의 옥룡사지” 이다. 옥룡사는  도선국사와 관련된 유서깊은 사찰로, 발굴조사를 통해 승려들의 탑(부도)과 함께 쌍비가 세워졌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한 사찰에 두 고승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진 독특한 사례로, 해당지역 불교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전라남도 광양의 옥룡사지에서 도선국사와 관련된 ‘쌍비와 쌍탑’이 함께  전해져 그 중요성이 일찍부터 알려졌다.

쌍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법화경』의 교리적 상징성을 나타내는 신앙의 대상물이자 가람 배치의 핵심 요소이다. 또한 교리적 배경에 의한 건축 양식의 특징이라 한다.

쌍비는 특정 인물이나 역사를 기록하는 문화적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고승의 행적과 사찰의 역사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한 기록 및 기념물로, 특히 옥룡사지처럼 역사적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데 사용되었다 한다.

일반적 호칭으로 도선국사로 많이 불리고 있는데 “선각국사 도선”이며, 도호는 “옥룡자”로 이 곳의 지명인 “옥룡”은 이로 부터 나왔다고 한다. 한편 도선의 수제자인 동진 대사(경보스님)은 광양 백계산 옥룡사에서 활동하면서, 고려조 태조, 혜종, 정종 세 임금의 스승 역할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