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좌측이 쌍사자 석등 모형품, 우측이 삼층석탑. 그 우측에 천불전 옆모습이 보여야 하는 데 없다. 그 것은 지난 9월 한달 간 중흥사내 역사 검증을 위해 임시 철거한 상태이다. 2026년에는 중흥사 전체적인 역사 재검증을 진행한다고 중흥사 강용원 사무장이 밝혔다. 사진=한재만
중흥산성 가는 산 길. 사진= 광양시
중흥산성 오르는 입구에서 촬영한 백운산 중흥사 전경. 사진=한재만
상단 좌측이 쌍사자석등 모형품. 우측 삼층석탑, 그 우측이 천불전 옆모습이다. 사진=한재만
중흥산성 성터 흔적. 사진=광양문화원

광양에는 마로산성, 불암산성, 봉암산성 등 백제 시대에 축성된 석성(石城)과 고려 시대의 토성(土城)인 중흥산성 등 유서 깊은 4대 산성이 있다.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에 있는 중흥산에 중흥산성이 있다. 중흥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광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승병과 의병을 양성하는 훈련장이었고, 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산성 안에 있는 중흥사는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운암사의 명맥을 잇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1963년에 새롭게 지어진 사찰이다.

중흥산성은 백운산 중턱 해발 278m~406m, 산봉우리 여섯 개를 아울러 계곡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사면을 활용해 만든 ‘토성(土城 / 흙으로 만든 성)’이다. 광양시에서 조사한 여러 산성 중 그 규모로는 가장 크지만 흙으로만 층층이 쌓아 올려진 만큼 일반인들이 그 흔적이나 경계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정밀조사에서 발견된 판축기법(흙을 다져 쌓는 건축양식)이나 고려시대 기와 및 문의 흔적, 건물 자리 등을 발견해 이곳에 산성이 있었다는 것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광양중흥산성에 오르는 데 설치된 현판(1) 내용이다. 종별 : 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 지정일 : 1999년 12월30일, 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 22 외, 시대 : 고려, 규모 : 면적 488,823㎡, 성 둘레 3.4km이다.

여섯 개의 산봉우리를 아우르는 광양중흥산성.

옥룡면 운평리에 자리한 ‘중흥산성’은 해발 278.2m에서 406.4m에 이르는 6개의 산봉우리를 아우르면서 계곡의 경사면을 최대로 이용하여 만든 포곡형(包谷形 :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산릉에 따라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성안에 넓은 계곡을 포함하고 있음) 토성(土城)이다.

축성시기는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시대 초기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으로 활동됐고, 왜군의 습격을 받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온다. 산성 규모는 둘레 3,400m, 성벽 너비 9~13.5m. 외벽높이 3.05m, 내벽높이 1~2m, 성내 면적 488.823㎡이다. 지형이 완만한 동남쪽에는 저수지 둑을 따라 길이 240m의 내성이 역시 토성으로 축조되었다. 1998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정밀지표조사에서 고려시대 기와류와 문이 있었던 흔적, 건물지 등을 확인하였다.

산성에 정상오르기 전 ‘세심정(洗心亭)’이라 불리는 정자 인근에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성의 정상부에 다다르는데, 동쪽으로 섬진강과 하동군이 있고, 북쪽에 는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는 백운산(해발 1,222m)이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순천시가 있고, 남쪽으로는 광양시를 비롯하여 광양만을 조망할 수 있다, 기록되어 있다.

광양중흥산성에 오르는 데 설치된 현판(2) 내용이다.

중흥산성은 광양에서 가장 크고, 유일한 토성이다. 외벽에 돌을 세단 정도 덧 쌓아 만든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또는 고려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흙을 시루떡처럼 다져 올리는 판축법으로 쌓았으며, 자연 지형을 잘 활용한 구조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3.4km이며, 그 안에서 길이 약 240m의 내성도 있다. 위에서 보면 동서로 긴 네모꼴 이며, 서북쪽은 높고 남동쪽은 낮다.

중흥산성은 해발 278-406m의 여섯 개 봉우리를 중심으로 계곡일대를 감싸듯 쌓았다. 천연 요새를 이루는 지형에 유치하며, 구례·남원·하동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과 승병이 이곳에서 훈련했으며, 왜군의 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내성 안에는 통일신라시대 고승인 도선국사가 세운 절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그 자리에 중흥사가 세워졌으며, 창건 때 만든 삼층 석탑이 경내에 남아 있다.

광양문화원, 광양알기편에 기록된 내용이다. 옥룡면에 위치한 중흥산성은 6개의 산봉우리를 아우르면서 계곡 경사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은 포곡형 산성이다. 외성의 길이는 4km로 매우 길고 내성은 240m로 흙을 단단하게 다지면서 층층이 쌓은 판축법의 토성이다.

성이 들어선 곳은 백운산 중턱으로 산 전체가 천연적인 요새이자 구례, 남원, 하동, 화개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축성시기는 수습된 기와로 보아 고려 초로 추정되며, 토성의 흔적은 중흥사 입구를 제외하고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과 의병을 양성하는 훈련장으로 사용하였으며, 왜군과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광양시의 기록물이다.  중흥산성은 전라남도 기념물이다.

중흥산성은 해발 278~406m의 봉우리 6개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아우르며 쌓은 토성이다. 토성의 외벽에 3단 정도의 석축을 보강한 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후기 또는 고려시대 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성이 위치한 곳은 산 전체가 천연요새이자 구례, 남원, 하동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으로 활용되었으며, 왜군의 습격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산성은 광양에서 가장 큰 산성이며 유일한 토성이기도 하다. 위에서 보았을 때 동서 긴 네모꼴을 하고 있으며 산성의 서북쪽이 비교적 높고 남동쪽이 낮은 상태이다.3.4km 길이의 외성과 240m 길이의 내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흙을 시루떡처럼 다져 쌓은 판축법이 사용되었다.

내성 안쪽에는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절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현재는 중흥사(中興寺)라는 절이 있으며  창건 때 조성된 삼층석탑이 경내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