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중흥산성-중흥사-대웅전-측면에-세워진-보물 제112호 삼층석탑. 그 좌편에는 탑비가 있어 삼층석탑을 이해나는데 도움을 준다. 사진=한재만
광양 중흥산성 중흥사 대웅전 측면에 세워진 삼층석탑. 사진=한재만
중흥산성 중흥사 대웅전 좌측에 건립된 사진속 좌측이 쌍사자석등 모조품. 우측이 보물 제112호 3층석탑이다. 사진=한재만
보물 제112호 중흥산성 삼층탑비. 사진=한재만
보물 제112호 중흥산성 3층석탑 구조도면. 사진=한재만

광양시는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넘어, 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백운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이 땅에는 삼국시대 성곽부터 통일신라 사찰, 장인의 숨결이 깃든 무형유산, 천연기념물 숲까지 다채로운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광양 곳곳에 남아 있는 국가지정유산을 살펴보고, 우리 지역의 정체정과 문화적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6편의 연재를 마련했습니다. 각 편에서는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담은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광양의 새로운 매력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싣는 순서]
1편 : 광양마로산성
2편 : 광양옥룡사지
3편 : 천연기념물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천년기념물 제489호
4편 : 국가무형유산 장도장(粧刀匠)·보유자 박종군
5편 : 광양읍수와 이팝나무, 유서깊은 마을 숲
6편 : 국가지정유산 중흥산성·중흥사 보물 제112호 삼층석탑

광양시는 백제시대에는 ‘마로(馬老)’, 통일신라시대에는 ‘희양(晞陽)’, 고려시대부터는 ‘광양(光陽)’으로 불려왔다. ‘마로(馬老)’는 우두머리, ‘희양(晞陽)·광양(光陽)’은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광양시 옥룡면 상운마을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1999.12.30)된 중흥산성’이 있다. 城(성)내 ‘중흥사(中興寺)’경내에는 국보급 유물·유적으로 국보 제103호 쌍사자석등, 보물 제112호 삼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제 제142호 석조 지장보살 반가상이 있다. 국보인 쌍사자석등은 수많은 고초 끝에 현재 국립 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광양시는 원래 자리인 중흥사 경내로 이전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중흥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112호(1963.01.23 지정), 간주석은 보물 제282호·제353호·제389호로 각각 지정됐다. 간주석(竿柱石)은 상대석(上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을 받치는 기둥을 말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기록된 “보물 112호 중흥사 삼층석탑”에 대한 글이다. 중흥사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높이 3.8mh의 삼층석탑 1기가 있다. 기단부에는 팔부신장(八部神將), 또 다른 호칭인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조각되어 있다. 팔부신장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덟 수호신이다. 여덟이라 팔부중(八部衆)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천(天)·용(龍)을 으뜸으로 치기 때문에 천룡팔부(天龍八部) 또는 천룡팔부중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실제로 여덟 명은 아니며, 여덟 가지 존재라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정의하고 있다.

광양문화원’에 소장된 ‘보물 112호 중흥산성 삼층석탑’에 대한 글이다. 중흥산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높이는 3.8mh이며,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불국사 삼층석탑을 계승한 이중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양식이다.

그러나 불국사 삼층석탑과는 달리 탑의 기단부와 탑신에 많은 장식이 있다. 상층 기단의 각 면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앞면에는 인왕상 2구, 양측면에는 사천왕상 2구씩, 뒷면에 는 보살상 2구를 조각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이뤄져 있고, 1층 탑신의 각 면에는 여래상 1구씩, 즉 사방불로 이뤄졌다. 이러한 형식은 9세기에 유행하였다.

중흥사 삼층석탑” 전면 좌측에는 ‘석탑의 구조도·석비’가 우측에 세워져 있고, 석탑의 의미가 “하기내용” 처럼 기록되어 있다.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 무렵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 돌과 지붕 돌로 이뤄져 있고,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않다. 기단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고, 아래층 기단에는 중앙에도 3개의 기둥을 새겨 넣었다. 위층 기단에는 중앙에 기둥을 새겨 한 면을 둘로 나눈 후, 인왕상·공양상·사천왕상” 등을 ‘돋을새김’ 으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돋을새김: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

1층 몸 돌 각 면에 연화대좌 위에 있는 여래상을 조각했다. 이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부처가 있음을 의미한다. 북쪽의 여래상만 서 있고, 나머지는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기단부와 탑신부에 조각상을 장식한 양식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등장한 요소이다.

각층 몸 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지붕 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석탑의 존재는 통일신라시대의 광양지역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신라말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섬세하다. 구조가 아름다워 예술적 가치가 높은 보물로 신라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하대석과 중석은 일석으로 4매 장석으로 구성, 상층기단 중석에는 우주가 표시되고, 탱주 일주로서 2구로 구분했다.

전면에는 인왕상 2구, 양측에는 사천왕입상 각 2구, 후면에는 보살상 2구가 양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오개석이 각각 한돌(一石)로 조성되어 있다. 초층 옥신에는 네 귀퉁이에 굵직한 우주가 있고 각면에는 앙련복련의 연화좌 위에 결가 부좌한 여래상이 1구씩 있어 사방불을 이루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 돌과 지붕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있지 않다. 각 기단의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고, 아래층 기단은 중앙에 3개의 기둥을 새겨 둘로 나누었다. 앞면에는 인왕상(仁王像),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 뒷면에는 공양상(供養像) 등을 돋을새김기법으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탑신부 1층 몸 돌의 각 면에는 연화대좌 위에 있는 여래상을 조각했는데, 이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부처가 있음을 의미한다. 북쪽의 여래상만 서 있고, 나머지는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기단부와 탑신부를 조각상으로 장식하는 양식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등장한 요소이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석탑의 존재는 통일신라시대의 광양지역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규모는 총 높이 3.8mh(1기)·시대는 통일신라·소재지는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중흥로 263-100번지 이다.

삼층석탑의 우아함을 탐낸 왜인들이 1936년 일본으로 운반하려고 해체하다 지방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원상 복구했다. 1958년 하대 복석과 3층부 탑개부를 보수했다 한다. 이처럼 애환이 있는 보물 제112호 삼층석탑이, 국보 제103호“쌍사자석등”(가품)과 마주하며, 현재 중흥사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