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순사건 77주년을 맞아 발굴된 희생자 유해 9구가 전남 광양에서 봉안됐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을 기다려온 유족들의 눈물과 진실 규명을 다짐하는 목소리가 교차한 이번 봉안식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문화적 의식으로 자리매김했다.
25일 광양시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 발굴 유해 봉안식’에는 유족과 전남도, 광양시, 경남 하동군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여순사건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경과보고, 추도사, 추모공연, 봉안제, 위패 인도 순으로 진행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장중한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올해 초 광양 진상면 매티재에서 발굴된 유해 9구는 탄피와 고무신 등 유류품 46점과 함께 수습됐다. 매티재는 여순사건과 하동 보도연맹 사건 당시 희생자들이 집단 학살당한 장소로, 지형의 변화가 거의 없어 최근까지 유해 발굴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 발굴로 70여 년간 땅속에 잠들어 있던 희생자들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와 국가 묘역인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됐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추도사에서 “오늘의 봉안식은 유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날이자, 우리 모두에게 역사적 정의를 향한 이정표가 된다”며 “민주와 인권, 평화의 가치를 지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유해를 직접 맞이한 유족 배해윤 씨는 “DNA 검사를 통해 어렵게 아버지를 찾게 됐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이번 발굴이 더 많은 유해가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눈물을 훔쳤다.
정 시장은 “광양시는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오랜 세월 통한의 기다림이 이어졌지만, 진실을 마주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봉안식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추모를 넘어, 광양과 전남 동부권이 지닌 평화·인권 교육의 현장으로서 매티재의 의미를 다시 부각시켰다. 매티재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산 교육장이자, 역사 체험 관광지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광양시는 유해 발굴 현장을 보존하고 추모 공간을 조성해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직접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을 되새기고 평화 관광 자원으로 연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