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6시.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 불이 켜진다. ‘엄마손밥상 1호점’ 조리실 문이 열리고, 조리사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기계 소리도 없고 말소리도 적지만, 손길만은 분주하다. 그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밥 한끼를 위해 새벽을 연다.
조리팀은 모두 6명. 시간과 싸우듯, 손놀림이 바빠진다. 쌀을 씻고 채소를 다듬는다. 300여 개 도시락을 싸기 위해 필요한 쌀만 40kg. 계란찜은 기본 12판을 넘긴다. 콩나물, 양파, 대파, 멸치… 재료들이 속속 조리대로 오른다. 포장작업이 시작되는 7시까지 조리는 마쳐야 한다.
“피곤할 겨를이 없어요. 모두 우리 부모님께 드리는 밥이라 생각하니까요.”
조리장 김혜숙(75) 씨는 아침 준비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도시락을 받는 어르신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늘 기도하며 요리한다’는 그는, 이미 20년 넘게 교회 노인대학의 점심을 책임졌던 베테랑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온라인 새벽기도를 마치고 출근한다는 김 씨는 “이 나이에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했다. 허리에 지압 벨트를 두른 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팀원 자랑을 잊지 않는다. “자매 같고, 친구 같고, 서로 챙겨가며 일하는 모습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포장팀 6명이 부엌에 합류하며 더 활기를 띈다. 앞치마와 두건, 장화를 갖춰 입은 이들이 어제 세척팀이 소독한 도시락 용기를 꺼낸다. 도시락 가방을 줄 세우고, 지역별로 나눠 담을 바구니도 준비한다. 조리된 반찬은 순서대로 각자 맡은 도시락에 담긴다. 뚜껑을 덮는 이, 차곡차곡 포개는 이, 밥과 국을 담는 이까지. 일련의 동작은 자동화 기계처럼 흐트러짐이 없다.
포장팀의 김순희(73) 씨는 도시락을 싸며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실 걸 생각하면 피로가 사라진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7시 50분. 조용히 문이 열리고 배달팀 시니어들이 들어선다. 금호·태인동을 맡은 김홍필(69) 씨, 진월·진상·옥곡면의 심명숙(69) 씨, 광영동을 도는 온연옥(60대) 씨가 각자의 구역으로 도시락을 옮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치매 어르신이셨어요. 자녀와 연락이 끊긴 채 혼자 계셨죠.”
김홍필 씨는 어르신의 이사를 돕고, 장애등급 신청을 두 번이나 대신 진행해 요양보호 대상자로 지정받게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 후 병원과 요양병원을 함께 다녔고, 결국 장례까지 돕게 됐다. “잠시나마 그분에게 가족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습니다.”
도시락이 모두 나간 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세척팀의 시간이다. 백임순(70) 씨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이곳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개운해요. 어르신들이 깨끗한 식판을 쓰신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감사해요.” 설거지를 마친 그의 손끝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도시락을 받는 이들 중 임춘순(77) 씨는 당뇨로 발가락 두 개를 절단했고, 고관절 수술로 서 있기도 어렵다. “설거지? 꿈도 못 꿔요. 도시락이 없으면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몰라요.” 그의 목소리에는 고마움과 절실함이 동시에 베어 있었다.
광양시니어클럽, ‘엄마손밥상 1호점’ 통해 하루 440개 도시락 정성 배달
광양시니어클럽(관장 반영승)이 운영하는 ‘엄마손밥상 1호점’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홀로 지내는 어르신을 위한 도시락 배달 사업으로, 하루 300개에서 많게는 440개의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전달하고 있다.
광양시니어클럽의 ‘엄마손밥상 1호점’은 지난 2017년 중마노인복지관이 ‘포스코1%나눔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취약노인가정 도시락 배달’ 사업에서 출발했다. 이후 2019년 광양시니어클럽 개관과 함께 사업이 위탁되며 도시락 수는 당초 60개에서 440개로 확대됐다.
7월 4일 광양시니어클럽에 따르면, ‘엄마손밥상 1호점’은 단순한 도시락 배달을 넘어, 독거노인과 취약계층 어르신의 안부를 살피는 복지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도시락 배달을 통해 고독사를 막은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양시니어클럽 문영자 팀장은 “이 사업은 단순히 도시락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화학조미료 대신 직접 담근 젓갈과 매실청을 사용하고, 위생 관리는 물론 정성과 마음을 담아 음식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이어 “운영 시작 이후 지금까지 위생 문제로 지적된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팀원 모두가 사명감을 갖고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리·포장·배달·세척을 담당하는 시니어들은 매일 새벽부터 부엌을 지키며 정성과 사랑이 담긴 도시락을 싼다. 광양시니어클럽은 앞으로도 지역 어르신의 건강한 식생활과 정서적 안정을 돕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