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 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시작하며, 봄비 속에 찾은 광양 교육의 ‘보이지 않는 뿌리’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기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광양 교육의 깊은 뿌리를 찾아 봉강면으로 향했습니다. 매화꽃이 만개하더니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앞다투어 피어난 봄 동산의 꽃잔치를 뒤로하고 당도한 곳은 광양시 봉강면 상봉마을입니다.
사실 지역의 향토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국가 지정 문화재와 달리 안내 표지판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봉계교를 건너 천변을 따라 오르니 드디어 정갈하게 관리된 한 채의 정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14호, ‘거연정(居然亭)’입니다. 광양시 봉강면 상봉마을. 백운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줄기가 봉강천을 이루고, 그 곁에 고요히 자리한 한 채의 정자가 있습니다. 이 정자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을 담고, 한 인물의 사유와 실천을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자연 속에 깃든 선비의 사유 공간, 거연정
1898년, 술재(述齋) 박희권(朴熙權, 1851~1914) 선생이 자신의 독서와 강학을 위해 세운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비봉산의 유려한 능선과 성불계곡에서 내려온 봉강천의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암반 위에 자리 잡은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과 학문이 하나가 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거연(居然)’이라는 이름은 성리학의 대성자 주희의 시구 “거연아득수원지(居然我得垂竿地)”에서 유래했습니다. “내 마음 편안히 머물며 낚싯대 드리울 곳을 얻었노라”는 뜻처럼, 이곳은 세속의 명예를 떠나 자연의 섭리를 낚고 진리를 탐구하던 선비 정신의 요람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매천 황현 선생이 이곳의 풍광에 감탄하며 ‘거연정기’를 남긴 것 역시 이곳이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당대 지성들의 교류처였음을 증명합니다.
술재 박희권, ‘지식‘이 아닌 ‘정신‘을 심은 교육자
거연정의 주인 박희권 선생은 면암 최익현과 연재 송병선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위정척사와 실사구시의 정신을 동시에 체득한 실천적 지식인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운이 기울자, 그는 관직의 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구국의 길은 바로 ‘교육’이었습니다.
선생은 1907년 광양향교 명륜당에 광양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광명학교(光明學校)’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했습니다. 이는 훗날 사립 희양학교를 거쳐 현재의 광양서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지역 근대 교육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최근 후손인 박판기 씨가 리모델링 중 발견한 고문서는 선생이 지역 주민들과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학교를 세웠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하며 광양 교육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주었습니다.
거연정의 ‘소요 교육‘, 오늘날의 인성 교육으로 흐르다
그의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도리, 공동체의 윤리, 그리고 민족의 정신을 가르치는 전인교육이었습니다.
향교가 국가의 법도를 가르치는 공교육의 장이었다면, 거연정은 개인의 인격 수양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심화학습’의 장으로 상호보완적 교육이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 일제가 왜곡된 교육을 강요할 때, 그는 전통 학문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습니다. 이는 무력 투쟁이 아닌 ‘정신의 저항’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가난한 제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공부의 끈을 놓지 않게 하므로 나눔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자연 속에서 삶을 통해 ‘염치와 도리’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 광양 교육이 추구하는 ‘인성 중심 교육’의 원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고택이 지켜낸 시간과 정신, 그리고 미래를 향한 유산
거연정은 세월 속에서 한때 황폐해지기도 했으나, 1938년 후손들에 의해 중건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015년에는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14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정자 앞 봉강천 계곡을 따라 변함없이 흐르는 물소리와 건너편에 서 있는 수령 120년의 왕버들나무는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그 시절을 묵묵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 정신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택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가문의 철학과 한 시대의 윤리를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거연정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정신이 공동체 속에서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거연정은 과거의 유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 공간은 미래를 향한 교육과 문화의 자산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첫째, 거연정을 지역 인문학 교육의 거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비정신과 전통 교육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역사문화 관광 자원으로의 가치도 큽니다. 백운산과 봉강천의 자연경관과 결합된 거연정은 ‘사유와 치유의 공간’으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거연정이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과 연결된 살아있는 공간으로 기능할 때 그 가치가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맺으며, “사람을 먼저 세우는 것이 시대를 세우는 길이다“
봉양사가 신재 최산두라는 거인을 기억하는 ‘제향의 공간’이라면, 거연정은 박희권 선생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인재를 길러낸 ‘실천의 현장’입니다. 거연정은 한 선비의 독서처에서 시작되었지만, 한 지역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술재 박희권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교육을 통해 희망을 심은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비에 젖은 거연정 마루에 서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
거연정은 흐르는 물소리를 빌려 대답합니다. “사람을 먼저 세우라. 그것이 시대를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100년 전 선생이 뿌린 교육의 씨앗은 이제 거대한 숲이 되어 광양의 미래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참고 정보]
거연정 위치: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비봉길 56-25 (상봉마을)
주변 볼거리: 정자 옆 암벽의 ‘거연정’ 암각문, 120년 수령의 왕버들나무
역사적 연결고리: 광명학교(1907) → 사립희양학교 → 현 광양서초등학교

![[기자] 응급복구로 버티는 매치재](https://gy-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20260401-국지도-58호선-매치재-산사태-현황-218x150.jpg)
![[길 위의 광양사(史), 길 위의 사람들] ⑬ 광양의 정신적 지주, 신재서원과 봉양사](https://gy-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3/봉양사1-1-218x150.jpg)





![[기자수첩] 중동발 에너지 위기, 생활 속 절약 실천 중요](https://gy-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승용차5부제-218x150.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