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광양시 성황동의 옛 절터에 서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석탑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보물로 지정된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탑은 고려시대 석탑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면서도, 시대적 흐름과 지역적 특색이 고스란히 담긴 귀중한 유산이다.
이 석탑의 첫인상은 ‘순박함’이다. 지대석과 하층 기단 중심을 각각 별개의 돌로 하고 4매의 판석으로 짜 맞춘 솜씨에서는 기교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려 했던 당시 석공의 마음이 읽힌다. 특히 기단 윗면에 상층 단부를 받기 위한 테두리 장식인 몰딩을 과감히 생략한 점은 이 탑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이다. 세련된 조각이나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오히려 그 단출함이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강인함으로 다가온다.
탑의 몸체인 탑신부로 눈을 돌리면 옥개석과 탑신을 각각 하나의 돌로 다듬어 올린 정성을 볼 수 있다. 2층 지붕돌부터는 위로 갈수록 크기가 줄어드는 체감률이 적절하여 전체적인 균형미를 잃지 않았다. 비록 지붕돌 받침이 3단으로 형식화되고 세부 수법에서 다소 퇴화한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낙수면의 경쾌한 곡선과 전각에서 살짝 치켜 올라간 반전의 묘미는 고려 하대 석탑 특유의 미감을 잃지 않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 탑이 이곳에 서 있음으로써 고려시대부터 사찰이 경영되었음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문헌이 전하지 않아 사찰의 이름조차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때 기단부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1976년 완전한 보수를 거쳐 오늘날의 당당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름 모를 옛 절터에서 홀로 수행자처럼 서 있는 이 탑은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온몸으로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문화유산은 박물관 유리창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터전 곁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성황리 삼층석탑처럼,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습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화려한 보물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순박한 석탑 앞에 서서 이름 없는 장인의 숨결과 잊힌 사찰의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흐르는 역사의 지평을 마주하는 진정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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