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 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읍내리 골목에 숨겨진 ‘천 년의 책임감’을 찾아서
한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도시의 ‘중심’이 어디였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오늘날 광양의 살림살이를 시청이 맡고 있다면,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현청(縣廳)’ 혹은 ‘관아(官衙)’가 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관아는 단순히 세금을 걷고 죄를 다스리는 엄숙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질서가 백성의 삶과 직접 만나는 지점이자, 장날이면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던 지역 공동체의 심장이었습니다.
지난 호에서 ‘광양’이라는 찬란한 이름의 탄생을 보았다면, 이번 호에서는 그 이름 아래 구체적인 민생이 보살펴졌던 ‘광양 현청 터’를 중심으로 우리 고장의 변천사를 추적해 봅니다. 이제는 흔적만 남은 옛 터를 걷다 보면, 발밑에서 들려오는 천 년의 목소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읍성 안 13개 관아 시설, 그 흔적을 찾아서
광양시는 십여 년 전 ‘광양 역사 흔적 찾기’ 사업을 통해 읍성 안 관아 시설 13개소의 위치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매일 걷는 읍내리 골목길 지번 하나하나에 옛 선조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관아의 으뜸, 객사 ‘희양관(曦陽館)’
보통 관아 하면 사또가 있는 동헌을 떠올리지만, 사실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은 ‘객사’였습니다.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매달 절을 올리던 왕권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광양 객사는 통일신라 때의 옛 이름을 딴 **’희양관’**이라 불렸으며, 현재 읍내리 239번지 일대로 추정됩니다.
수령의 집무실, 동헌 ‘봉양각(鳳陽閣)’
현감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동헌은 **읍내리 252-1번지(현 매일시장 일대)**에 위치했습니다. 2021년 매일시장 현대화 공사 중 실제 유적이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곳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민초들이 집결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아전들의 일터와 백성들의 아픔이 서린 곳
내아(內衙): 수령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읍내리 253번지(현 KT 자리)**입니다.
질청(作廳): 이방 등 아전들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읍내리 272-1번지로 추정됩니다.
형옥(刑獄): 죄인을 가두던 감옥으로, 현재 **농협중앙회 자리(읍내리 159번지)**가 그 터입니다.
본창(本倉): 무기고와 양곡 창고였던 이곳은 **칠성리 227-1번지(구 광양경찰서 자리)**로 보입니다.
사라진 유산 위에 세워진 오늘
세월의 흐름과 근대화의 파고 속에서 장엄했던 옛 관아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학교와 관공서가 들어서며 새로운 공공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수루(正綏樓), 백성의 소리를 듣던 누각
현청 입구에는 ‘정수루’라는 누각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이곳은 사또의 위엄을 알리는 문이기도 했지만,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북을 치던 소통의 창구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실물을 볼 수 없지만, 그 정신만큼은 오늘날의 민원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명에 남은 기억, ‘성안’과 ‘성밖’
우리 어르신들은 지금도 “성안에 간다”, “성밖으로 나간다”는 표현을 쓰시곤 합니다. 성벽은 헐려 도로가 되었지만, 우리 입술에 남은 말들이 그날의 경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광양 역사문화관(구 광양군청) 앞마당에서 만난 주민 K씨(75세)는 건물을 바라보며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여기가 예전 광양군청 자리잖아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또들이 일하던 관아 터였다고들 해요. 건물의 쓰임새는 바뀌었어도, 천 년 넘게 우리 광양의 중심을 잡아온 이 땅의 묵직한 기운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길 위에서 나누는 생각: 보이지 않는 질서와 ‘공의(公義)’의 회복
기자는 현청 터를 바라보며 행정의 본질을 되새깁니다. 관아는 군림하는 곳이 아니라, 억울한 자가 없게 하고 이웃의 삶을 살피는 ‘보살핌’의 장소였습니다. 관아 터는 권위의 공간인 동시에 백성들의 삶이 교차하던 광장이었습니다.
현청 앞마당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역의 큰 잔치가 벌어지는 광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광양 현감으로 부임했던 수많은 인물이 이곳에서 백성을 돌보았으며, 때로는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외침이 이 담장을 넘기도 했습니다.
현청을 중심으로 시장(오일장)이 형성되고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 오늘날 광양읍의 골격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걷는 읍내 골목길들은 수백 년 전 현청을 향해 걸어가던 아전들과 장꾼들의 발걸음이 굳어져 만들어진 ‘시간의 길’입니다.
“정의를 물같이 흐르게 하라”는 외침은 과거 광양 현청에서도, 오늘날의 시청사에서도 변함없이 울려 퍼져야 할 가치입니다. 건물은 새로 지어질 수 있으나, 그 터에 서려 있는 정의와 긍휼의 정신은 우리 광양의 영원한 주춧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 터에서 내일의 질서를 묻다
광양 현청 터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옛 건물을 회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고장이 지탱해온 ‘질서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비록 주춧돌 하나 남지 않았을지라도, 그 터 위에서 우리는 더 따뜻한 광양 공동체를 꿈꿉니다.


‘장소는 기억을 저장하는 그릇이다. 옛 현청 터를 밟는 것은 광양의 천 년 책임감을 배우는 일이다.’
[다음 회 예고] 제9회: 사라진 성곽, 광양읍성의 기억 – 사라진 성곽을 따라 걷는 역사 산책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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