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광양 중마부두서 만난 장어 한 상, 그리고 오래된 추억
광양 도심을 취재하는 날이다. 오전에는 옛 도심인 광양읍 일대를 둘러보고, 이어 현재 시청이 자리한 신도심 중마동까지 취재를 이어갔다. 여기저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직장인들이 점심을 마치고 빠져나갈 시간이어서 식당들이 조금 한가해질 때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식당들이 모여 있는 중마 부두 쪽으로 향했다. 광양만 바다 위로 길게 뻗은 이순신대교가 아치형 현수교의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바다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임진왜란 말기 전투가 순천왜성에서 시작되어 광양만을 지나 노량까지 이어졌고, 결국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다. 지금 중마 부두 공원에는 영화 명량 촬영 기념 표지판과 포토존도 설치되어 있어 바다와 역사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든다.
그 바닷가 식당가에서 눈에 들어온 간판이 있었다. 이름하여 ‘이순신장어’. 역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 흥미로워 문을 밀고 들어갔다. 홀에는 손님이 거의 빠져나가고 작은 방에 두어 테이블만 남아 있었다. 조용한 구석 자리에 앉아 점심 특선 장어정식(17,000원)을 주문했다.
잠시 후 상이 차려졌다.
민물장어 양념 숯불구이 한 접시, 장어탕, 그리고 돌솥밥까지. 생각보다 푸짐한 상차림이다. 몇 컷 사진을 찍고 숯불 향을 맡는 순간, 시니어 기자의 기억은 어느새 어린 시절 고향으로 흘러갔다.


어린 시절 장어와의 추억
내 고향은 논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동네 아래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큰 저수지가 있었다. 반경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저수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저수지에서 십여 리 하천을 따라 내려가면 바닷물이 드나드는 수문이 있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었다. 겨울이 끝나고 정월 대보름이 지나 훈풍이 불어오면 하천에는 작은 생명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실뱀장어다.
그 시기가 되면 수산업자들이 마을 아이들에게 일을 맡겼다. 석유를 묻힌 헝겊으로 횃불을 만들어 밤에 하천 수면을 비추면, 불빛을 따라 하얀 실뱀장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뜰채로 그 어린 장어를 떠서 업자에게 넘겼다. 한 마리에 10원, 많아야 15원 정도였지만 그때 아이들에게는 꽤 큰 돈이었다.
유채꽃이 피기 전까지 봄밤의 하천은 그렇게 작은 생명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또 한 번은 1960년대 말, 큰 가뭄이 들었던 해였다. 저수지 물이 거의 말라 바닥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오전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바가지나 대야를 들고 저수지에서 물을 퍼다 논에 부었다. 그때는 ‘가뭄 극복’이라는 글씨가 적힌 티셔츠까지 나누어 주던 시절이었다.
물이 줄어든 저수지 바닥에서는 온갖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잉어, 가물치, 메기, 붕어가 양동이에 담길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장어라는 녀석은 달랐다. 물이 줄어들자 진흙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동네 형들은 대장간에서 만든 긴 장대 끝 낚시칼로 진흙을 긁어내며 장어를 잡았다. 아이 팔뚝만 한 장어가 걸려 나오기도 했다. 우리 같은 어린 국민학생들도 따라 해보았지만, 몇 시간 긁어도 한두 마리 잡기 어려웠다. 기술 차이가 컸다.
그래도 잡은 장어를 집에 가져가 숯불에 구워 먹던 날은 잊을 수 없다. 다만 장어 꼬리 부분은 아이들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어른들 몫이라며 늘 떼어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풍경이다.


장어는 왜 보양식이 되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산 장어는 점점 귀해졌다. 대신 양식 장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장어가 여전히 보양식의 대표 메뉴로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장어에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A와 비타민 E가 많아 시력 보호와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DHA와 EPA 같은 오메가 지방산도 들어 있어 뇌 건강과 혈관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장어의 점액에는 뮤신 성분이 있어 피로 회복과 피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방에서도 장어는 기력을 보충하는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양기를 북돋고 기력을 보하는 식품으로 평가했고, 『자산어보』에는 설사를 멎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다.
장어의 생태도 흥미롭다. 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올라와 자라다가 성체가 되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 산란한다. 특히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까지 약 3,000km를 이동해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란을 마친 어미는 생을 마감하고, 부화한 치어는 다시 강으로 돌아온다. 이런 회귀 본능 때문에 장어는 ‘신비로운 물고기’로 불린다.
한 끼 식사에 담긴 이야기
다시 눈앞의 장어구이로 돌아왔다. 숯불 향을 머금은 장어는 기름기가 적당히 올라 고소한 맛을 낸다. 돌솥밥에 한 점 올려 먹고, 뜨끈한 장어탕 한 숟가락을 곁들이니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장어 한 접시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린 시절 밤하천에서 잡던 실뱀장어의 기억, 가뭄 속에서 저수지 바닥을 긁어 장어를 찾던 추억, 그리고 오늘 광양 바닷가 식당에서 만난 한 끼 식사까지.
시니어에게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다. 삶의 시간과 추억이 함께 담긴 이야기다. 광양 중마 부두에서 만난 장어 한 상이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오늘도 취재 길 위에서 따뜻한 밥상을 만난다. 그리고 그 밥상 위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다시 꺼내본다.
※ 이순신장어 식당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항만13로 34 (061-701-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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