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의 햇살을 넘어, 세계를 비추는 광양의 빛으로" 광양시청이 있는 인근 도심 광양시 전경. 고려 태조 왕건이 하사한 '광양(光陽)'이라는 이름은 천 년의 시간을 돌아 오늘날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찬란하게 꽃피었습니다. 광양시청 인근 도심 너머로 멀리 광양제철소와 광양항이 펼쳐진 풍경은, 조상들이 예견했던 '빛의 고을'이 일구어낸 장엄한 현재를 보여줍니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빛의 이름’, 그 천 년의 약속

역사 속에서 한 지역의 이름이 결정되는 순간은 그 땅의 운명과 정체성이 확립되는 중요한 찰나입니다. 우리가 매일 부르고 살아가는 ‘광양(光陽)’이라는 이름은 지금으로부터 약 1,100여 년 전, 후삼국의 혼란을 잠재우고 고려라는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던 시기에 그 찬란한 뿌리를 내렸습니다.

지난 호에서 도선국사가 백계산에 심은 ‘비보(裨補)’의 철학을 살펴보았다면, 이번 호에서는 그 철학적 토양 위에 우리 고장이 어떻게 ‘빛의 고을’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는지 그 장엄한 서사를 따라가 봅니다.

마로(馬老)에서 희양(曦陽)으로: 태양을 향한 고대의 갈망

광양의 옛 이름은 ‘마로(馬老)’였습니다. 마로산성이 증명하듯, 고대 광양은 ‘우두머리’ 혹은 ‘높은 곳’을 뜻하는 마로현으로 불리며 남해안의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통일신라 경덕왕 시대(757년)에 이르러 ‘희양(曦陽)’이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여기서 ‘희(晞)’는 복사 비치는 햇살을 의미합니다. 이미 천 년 전 조상들은 백운산이 북풍을 막고 남해의 온화한 기운이 머무는 이 땅의 지리적 축복을 ‘햇살’이라는 단어로 꿰뚫어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훗날 ‘광양’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할 찬란한 전조였습니다.

“고려의 설계자 도선, 왕건에게 ‘빛의 고을’을 건네다” 영암 도갑사에 소장된 태조 왕건의 탄생과 건국을 예언했던 도선국사의 모습입니다. 스승이 머문 백계산 자락의 평온함을 사랑했던 왕건은, 도선과의 깊은 인연을 기리며 이 땅에 ‘광양’이라는 빛나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한 성인과 왕의 만남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지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선국사와 태조 왕건: 지명 속에 숨겨진 건국의 인연

‘광양(光陽)’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고려 태조 왕건 시기인 940년입니다. 왜 왕건은 이 먼 남쪽 고을에 ‘빛 광(光)’ 자를 하사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도선국사와의 깊은 인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선은 왕건이 태어나기 전, 그의 부친에게 왕건의 탄생과 고려 건국을 예언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선이 생의 마지막 35년을 보낸 광양은 고려 왕실에 있어 ‘정신적 스승’이 머문 각별한 장소였습니다. 비록 광양이 한때 견훤의 후백제 세력권에 있었으나, 도선의 제자인 경보(慶甫) 스님이 옥룡사에서 왕건과 교감하며 민심을 수습한 덕분에 광양은 큰 전쟁의 불길을 피해 ‘광양’이라는 평화로운 이름을 얻으며 고려의 품에 안겼습니다. 스승에 대한 왕건의 지극한 예우가 ‘빛의 고을’이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본 것입니다.

‘옥룡사지 도선국사 부도와 비석’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사지에 묵묵히 서 있는 이 부도(사리탑)와 비석은 ‘광양’이라는 이름의 탄생을 지켜본 역사의 목격자입니다. 비석에 선명하게 새겨진 ‘선각국사(先覺國師)’라는 명칭은 고려 왕실이 도선을 국가의 정신적 스승으로 예우했음을 증명하며,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했던 그와 광양의 깊은 인연을 상기시킵니다. 도선이 생의 마지막 35년을 보내며 수행한 이곳은 지형의 부족함을 채워 나라의 안녕을 빌었던 그의 ‘비보(裨補) 철학’이 고스란히 깃든 역사적 성지이자,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빛의 고을 ‘광양’이 시작된 뿌리 깊은 현장입니다. 사진=문성식
‘옥룡사지 통진대사 탑과 부도비’ 도선국사의 수제자인 ‘통진대사 경보(慶甫)’의 승탑과 부도비는 스승의 뒤를 이어 옥룡사에서 광양의 영성을 지켜낸 제자의 발자취입니다. 경보 스님은 고려 태조 왕건이 직접 옥룡사로 사람을 보내 예를 갖추었을 만큼 깊은 신뢰를 받았던 인물로, 후삼국의 혼란기 속에서 민심을 수습하며 광양이 평화로운 이름인 ‘광양(光陽)’으로서 고려의 품에 안기는 데 핵심적인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스승인 도선국사의 부도 곁에 나란히 자리한 이 유적은 천 년 전 광양이 단순한 남쪽 변방이 아니라, 건국 초기 새로운 국가의 질서를 함께 구상했던 사상적 요람이었음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지리(地理)가 지명(地명)이 된 축복의 땅

광양(光陽)은 빛의 근원을 뜻하는 ‘광(光)’과 그 기운이 미치는 따스함을 뜻하는 ‘양(陽)’이 만난 이름입니다. 이는 우리 고장의 자연환경과 절묘하게 맞물립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백운산(1,218m)은 북서풍을 막아주는 병풍이 되고, 산을 넘어오며 한층 따뜻해진 바람은 ‘광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지를 데웁니다. 여기에 남해의 난류가 더해져 광양은 겨울에도 온화한 ‘양지의 땅’이 됩니다. 조상들의 예지는 정확했습니다. 지명은 단순히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대지의 성품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던 셈입니다. 옥룡사지 입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광양은 겨울에도 볕이 좋아 사람 마음도 순둥순둥해지는 곳”이라며 지명 예찬을 늘어놓으십니다.

길 위에서 나누는 생각, 참된 빛을 품은 사람들의 공동체

사색의 길을 걷다 보면 ‘광양’이라는 이름이 품은 깊은 속뜻을 묵상하게 됩니다.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주변을 밝혀 존재의 가치를 드러나게 합니다.

태조 왕건이 이 땅에 ‘빛’의 이름을 준 것은 단지 날씨가 좋아서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 고장이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따뜻한 통로가 되길 바라는 공동체적 기대가 담겼으리라 믿습니다. 과거의 햇빛이 오늘날 광양제철소 용광로의 ‘산업적 빛’으로 계승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뜨거운 쇳물이 세상을 지탱하는 철이 되듯, 광양의 빛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비추고 있습니다.

유당공원의 풍경을 담은 이 사진은 과거 광양읍성의 서쪽을 지키던 해자와 비보림(裨補林)의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상들은 읍성의 허약한 기운을 보강하고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이곳에 연못을 파고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지형의 부족함을 자연으로 채우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로운 도시 설계 정신을 상징합니다. 비록 읍성의 성벽은 사라졌지만, 잔잔한 연못 위에 투영된 정자와 고목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 고장이 소중히 여겨온 수호와 공존의 가치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성벽의 기억 위에 내려앉은 평화로운 볕” 햇살 따스한 봄날, 유당공원을 찾은 한 부부가 고목 사이를 거닐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과거 광양읍성의 허약한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을 팠던 이곳은, 이제 지리적 결점을 채우려던 선조들의 ‘비보(裨補) 정신’을 넘어 시민들의 고단한 마음을 보살피는 따뜻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사라진 성벽의 빈자리를 대신해 수백 년을 버텨온 고목들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로, 광양의 ‘볕’이 빚어낸 평온한 일상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사진=문성식

이름은 존재의 집이다

“우리 이름 참 잘 지었지 않습니까? 고려 왕께서도 백운산을 보고 참 기가 막힌 이름이다 싶으셨겠지.”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주민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우리가 광양을 ‘빛의 고을’로 부를 때, 우리는 이미 그 이름에 걸맞은 빛의 사명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름은 불리는 대로 운명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광양이라는 두 글자 속에 담긴 도선의 지혜와 왕건의 서사, 그리고 조상들의 마음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누군가의 추운 마음을 녹여주는 따뜻한 ‘볕’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름은 존재의 집이다. 광양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 안에 숨겨진 빛이 일어난다.’

다음 회에서는 고려 시대 행정의 중심지로서 광양의 구체적인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관아가 있던 자리 – 광양 행정의 시작과 이동’ 편이 이어집니다.

[다음 회 예고] 제8회: 관아가 있던 자리 – 광양 행정의 시작과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