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사지에서 운암사로 이어지는 도선국사 참선길' 도선국사가 제자들과 함께 거닐며 땅의 이치와 마음의 도리를 논했을 참선길. 숲의 고요함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방문객의 사유를 깊게 한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결핍을 탓하지 않고 정성으로 채운 조상들의 지혜

빽빽한 동백나무 숲의 호위를 받으며 옥룡사지 터를 가로질러 봅니다. 도선국사가 35년간 고요히 걸었을 ‘참선길’을 따라 백계산 능선을 타다 보면, 화려한 건물은 사라졌어도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거대한 정신의 실체를 만나게 됩니다. 숲길 끝자락, 백운산의 기운이 맺힌 운암사(雲岩寺)에 다다르니 우리 안에서 꼬리를 흔드는 검정개 한 마리가 눈에 띕니다. 자세히 보니 다리가 셋뿐입니다. 불편한 몸으로도 활기차게 방문객을 맞는 그 녀석의 모습에서, 문득 이곳 백운산 기슭에 흐르는 ‘비보(裨補)’의 정신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백운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옥룡사지 전경. 광양의 영산 백운산은 도선국사에게 거대한 실험실이자 캔버스였다. 그는 이 땅의 흐름을 읽으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비보(裨補)’의 길을 찾았다. 사진=문성식
“동백꽃은 아직이어도, 마음은 벌써 붉게 피었습니다.” 도선국사와 제자들이 거닐던 옥룡사지 참선길 끝자락, 두 남녀가 햇살 아래 멈춰 섰습니다. 1,100년 전 도선국사가 비보의 철학으로 정성껏 심은 동백 숲은 여전히 푸르른데, 그 숲을 배경으로 선 연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꽃이 피길 기다리는 설렘보다 더 따뜻한 광양의 봄볕이 빈 절터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옛 성현이 가꾼 비보의 숲은 이제 우리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땅의 언어를 읽는 관찰자, 대지는 삶의 터전이자 유기체

우리는 흔히 ‘풍수(風水)’라고 하면 명당을 찾아 복을 비는 개인적인 술수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도선국사의 풍수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산의 흐름을 맥(脈)으로, 물의 길을 혈(血液)로 보며 국토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읽었습니다.

그에게 땅은 정복하거나 이용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땅이 품은 아픔을 읽고 그 상처를 보듬어, 인간과 대지가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한 선구적인 생태 철학자의 시선이었습니다.

비보(裨補), 부족함을 채워 완성하는 치유의 철학

도선 사상의 핵심인 ‘비보(裨補)’는 “모자란 것은 채우고(裨), 도우며 보태다(補)”라는 뜻입니다. 그는 완벽한 땅이란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점이 있는 땅에 나무를 심거나 탑을 세워 그 기운을 다스리는 것, 그것이 바로 비보입니다.

나무를 심는 마음: 옥룡사지를 감싼 7,000여 그루의 동백 숲은 단순히 경치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땅의 허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숲으로 그 문을 막아, 그곳에 터 잡고 사는 민초들의 삶이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자비로운 마음의 실천이었습니다.

탑과 비석의 의미: 참선길 곳곳에서 만나는 부도탑과 비석들은 땅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영적 마침표’와 같았습니다. 세월에 깎인 비석의 몸체는 사라졌어도, 그 자리에 남은 비좌(받침돌)들은 조상들이 이 땅을 얼마나 정성껏 대했는지를 웅변합니다.

광양 사람들의 삶에 스며든 ‘비보 생활관’

이러한 비보 정신은 광양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광양읍 유당공원의 이팝나무 숲은 읍성의 약한 지기를 보강하기 위해 조성된 대표적인 비보림입니다. 또한 마을 어귀마다 흙을 쌓아 만든 ‘조산(造山)’이나 커다란 정자나무 역시 거친 바람과 나쁜 기운을 막아 공동체를 지키려 했던 소박하고도 간절한 비보의 흔적입니다.

광양 사람들은 땅이 부족하면 땅을 탓하는 대신 나무를 심었고, 삶이 고단하면 서로의 결핍을 정성으로 메우며 살아왔습니다. 결핍을 원망하지 않고 ‘정성’으로 명당을 만들어가는 태도, 이것이 바로 광양이 품은 인문학적 자부심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 도선국사의 천년 혼을 마주하다” 백계산 옥룡사지 한편에 우뚝 선 선각국사 도선의 부도탑입니다. 고려의 건국을 예언하고 이 땅에 ‘빛(光)’의 지명을 허락하게 했던 위대한 선지자의 자취입니다. 정교하게 새겨진 팔각 원당형의 승탑은, 비록 몸은 떠났어도 그가 남긴 ‘비보(裨補)’의 가르침이 여전히 광양 땅을 굽어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진=문성식
“어머니를 향한 효심과 비보의 염원이 깃든 운암사” 도선국사가 어머니를 모셨던 생계 터에 세워진 운암사는 광양의 비보 사상을 상징하는 또 다른 명소입니다. 지형의 결핍을 보충하여 명당으로 완성하려 했던 국사의 뜻이 처마 끝마다 걸려 있습니다. 따스한 봄볕 아래 단정한 산사의 풍경은, 누군가의 부족한 삶을 따뜻하게 안아주고자 했던 조상들의 포용 정신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사진=문성식
“다리 셋이면 어떠랴, 자비로 채운 비보의 마음” 운암사에는 몸과 마음이 다친 떠돌이 개들이 모여듭니다. 장애를 입어 다리가 셋 뿐인 이 녀석도 스님의 따뜻한 공양 덕분에 기자를 향해 용맹하게 짖어댑니다. 부족한 지형을 나무로 채워 명당을 만들었듯, 다친 생명을 품어 삶을 온전하게 만드는 스님의 마음이야말로 이 시대가 실천해야 할 진정한 ‘비보(裨補)의 철학’이 아닐까요. 사진=문성식

현대적 의미, 내 마음의 비보림을 심다

운암사 우리 안에서 만난 세 다리 검정개는 비록 신체적 결핍이 있었지만, 그 존재 자체로 당당했습니다. 도선국사가 척박한 땅에 동백나무를 심어 명당을 일구었듯, 우리 역시 삶의 무너진 자리마다 소망의 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건이 나빠서 안 돼”라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나의 정성으로 채워가겠다는 책임감이 비보의 본질입니다. 붉게 떨어지는 동백꽃은 땅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조상들이 써 내려간 붉은 기도문입니다.

대지와 화해하는 마음의 길

이제 옥룡사지를 내려오며 다시 한번 동백 숲을 돌아봅니다. 진정한 명당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자의 손길에 의해 완성됩니다. 도선국사가 백운산 기슭에 심은 것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어떤 결핍 속에서도 희망을 일궈내는 광양의 강인한 정신이었습니다.

‘풍수란 땅의 복을 구하는 기술이 아니라, 대지와 화해하며 상처를 보듬는 마음의 길이다.’

다음 회에서는 도선의 풍수 사상이 예언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과, 그 인연이 어떻게 ‘광양(光陽)’이라는 찬란한 이름으로 피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도선국사 참선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울창한 동백나무 숲을 지나 옥룡사지에서 운암사, 그리고 백계산 정상으로 이어집니다. 길 위에 머무는 숲의 정취가 가히 일품입니다.

※ 백계산(도선국사 참선길)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산35-3 일대

[다음 회 예고] 제7회: 고려의 광양(光陽) – 태조 왕건과 도선의 예언, 그리고 지명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