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던 섬진강변에 위치한 광양 진월면 오사리 돈탁마을. 사진=문성식

[기획 연재] 길 위의 광양사(史), 유물이 말을 걸다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이번 주부터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제1회: 광양 땅에 처음 살았던 사람들, 섬진강변 ‘돈탁’ 이야기

신석기 시대 돈탁·중산마을 패총과 5천 년 전의 친구 ‘돈탁이’

새해의 첫 햇살이 광양 땅을 비춥니다. 우리는 흔히 광양을 ‘산업의 도시’라 말하지만, 사실 이 땅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둥지를 틀었던 생명의 터전이었습니다. 광양의 역사가 시작된 그 첫 페이지를 찾아 섬진강 물줄기가 머무는 진월면 돈탁마을과 중산마을로 향했습니다.

5천 년 전의 성찬, 섬진강 벚굴(강굴)

섬진강 자락의 야트막한 언덕, 이곳에는 ‘패총(貝塚)’이라 불리는 조개더미 유적이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선사시대 쓰레기장’이자 ‘생활 기록부’입니다.

진월면 돈탁마을과 중산마을 패총에서는 흥미로운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습니다. 기원전 3천 년에서 2천 년 사이의 토기 조각, 갈돌, 그리고 사슴과 개의 뼈가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수없이 쏟아져 나온 강굴(벚굴) 껍데기입니다.

봄이면 벚꽃이 필 때 맛이 가장 좋다 하여 ‘벚굴’이라 불리는 이 커다란 조개는 지금도 전국의 식도락가를 광양으로 불러모읍니다. 그런데 4~5천 년 전 신석기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이 섬진강변에 앉아 어른 손바닥만 한 벚굴을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니, 시공간을 초월한 동질감에 묘한 전율이 느껴집니다.

돈탁마을 섬진강변 전경, 신석기인들이 이곳에서 강굴(벚굴)을 채취하며 삶을 꾸렸을 섬진강, 시간을 품은 평화로운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진=문성식
돈탁마을에서 근래에 생활 쓰레기로 패기된 조개더미 모습 – ‘돈탁패총’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오랜 기간 쌓여 만들어진 유적이다. 광양 오사리 돈탁마을 인근과 진정리 중산마을 인근에서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패총)가 발견되었다. 사진=문성식

“우리 마을이 그렇게 좋은 곳이었소?”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취재진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습니다. 중산마을에서 만난 80대 어르신은 평생을 이곳에서 사셨지만, 마을에 그런 귀한 선사시대 유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눈을 반짝이셨습니다.

“어릴 적 뒷산 조개껍데기가 그냥 옛날 사람들이 먹고 버린 건 줄만 알았지, 그게 그렇게 오래된 역사인 줄은 몰랐네. 우리 마을이 참 좋은 마을이었구먼!”

반면 60대 여성분은 “유물 자리가 어디냐”는 질문에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의 보물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유물들이 발굴된 돈탁마을 전경- 돈탁패총 발굴지역은 광양만에서 내륙으로 약 7km 들어온 해발 10~15m의 섬진강변에 위치하며, 규모는 100×200m이다. 지형의 표면은 논밭 과수원이지만 발굴 당시 이곳 하층부에서는 원형 그대로의 패총 유구와 유물들이 나왔다. 1983년에 최초 발견되어 2011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사진=문성식
돈탁마을 패총에서 출토된 돈탁이(개) 유골 – 돈탁이는 오사리 돈탁패총에서 발굴된 개 유골 주인공의 이름이다. 체고 50cm 정도인 중대형 크기의 개 유골이다. 2011년 목포대박물관에서 붙여준 수컷 개의 이름이다. 2021년 창원대박물관이 주관한 ‘패총에 묻힌 개, 사람곁으로 오다’라는 주제의 영호남 학술 교류 특별전 포스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사진=목포대박물관
돈탁패총에서 출토된 유물 토기 조각- 발굴된 유물들은 기원전 3000년~2,000년 시기로 추정되믄 토기 조각, 갈돌, 동물 뼈 등, 또한 갓굴, 참굴, 꼬막, 백합 등 조개더미와 피뿔고동 등의 패각이 확인되었다. 사진=목포대박물관

5천 년 전의 반려견, ‘돈탁이’가 건네는 인사

이곳 유적의 가장 극적인 발견은 완전한 상태로 발굴된 개 유골 한 개체였습니다. 학자들은 이 개에게 마을 이름을 따서 ‘돈탁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습니다. 사냥을 돕던 동료였을지, 혹은 밤마다 신석기인의 움집 곁을 지키던 가족이었을지 모를 돈탁이의 존재는 선사시대가 결코 차가운 돌의 시대가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돈탁이와 신석기인들이 나누었을 온기, 모닥불 위에서 익어가는 벚굴의 담백한 향기…. 5천 년 전의 광양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삶의 희로애락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잊힌 기억을 기록하며

돈탁패총이 있는 언덕은 실은 마을의 주산(主山)입니다. 산업화와 개발의 거센 물결 속에서 유적지의 상층부는 교란되고 깎여 나갔지만, 다행히 그 깊은 속살은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우리는 너무 몰랐습니다. 발밑에 잠든 거대한 시간을 알지 못한 채 그 위를 바삐 걸어왔습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다시 확인한 것은, 역사는 박물관 유리 박스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선 이 땅, 그리고 마을 어르신의 주름진 미소 속에 살아있다는 사실입니다.

광양의 첫 사람들을 만났던 돈탁마을을 뒤로하며, 다음 여정은 청동기 시대 거대 권력의 상징인 ‘고인돌’을 찾아 용강리로 발걸음을 옮겨보려 합니다.

돈탁마을 거북등 터널- 해안도로 건설로 머리가 잘라졌지만 터널로서 연결 시켰다고 한다. 이곳에 대한 전설과 함께 한 때 신성 시 여겼던 거북 모양 지형이다. 거북이가 강물을 마시는 듯한 거북 등 형상 지형으로 이 주변이 벚굴(갓굴)을 채취하는 곳이었다. 사진=문성식
돈탁패총과 함께 발굴된 진정리 중산마을 패총이 발굴된 장소 중산마을 모습- 진월면 진정리 중산마을은 4개의 자연 마을이 연접해 있다. 섬진강과 만나는 수어천 하구에 위치해 있다. 중산마을은 남해고속도로가 마을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공사시에 패총유물이 최초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진=문성식
패총에서 발굴되었던 패각들- 갖굴(벚굴), 참굴, 백합, 악어굴, 꼬막, 돌고부지, 참재첩, 피뿔고동. 사진=목포대박물관

[다음 회 예고] 제2회: 만로국(萬盧國)이라 불린 땅 – 용강리 고인돌이 품은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