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향교, 향교 의미 찾는 ‘매천황현, 시패를 찾아라’ 행사 개최

광양향교가 ‘시·공간의 기억, 광양향교’란 주제 아래 향교·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 ‘매천황현, 시패를 찾아라’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9월 7일부터 11월 9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광양향교(광양읍 향교길 67)에서 열린다.

참석자들은 향교 곳곳에 적힌 한자를 타이포그래피 기법으로 재해석한 미술활동과 매천황현 선생 시구 관련 시패놀이 활동을 벌이게 된다. 정원은 기수별 15명씩 5기수, 총 75명이다.

광양향교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국가유산청 공모사업으로, 향교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 정신문화의 구심점으로서 향교의 역할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마련됐다.

관심 있는 시민은 구글폼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 개별적으로 신청하면 된다.

문의 : 광양향교 사무국(070-4258-2425)


*아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매천황현 초상화=한국민족백과사전

지정명칭 : 황현 초상화 (黃玹 肖像畵)

지정기관 : 문화재청

종목 : 보물(2006년 12월29일 지정)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조선 말기의 우국지사이자 학자인 황현(1855-1910)의 초상화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 전후 최고의 초상화가로 일컬어지는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그린 한말(韓末)의 대표적인 문인(文人)이자 우국지사인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의 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는 황현이 자결한 다음해인 1911년 5월에 일찍이 황현이 1909년 천연당 사진관(天然堂 寫眞館)에서 찍어 두었던 사진(寫眞)을 보고 추사(追寫)한 것이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황현의 본관은 장수(長壽),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다. 세종대의 명상 황희(1363-1452)의 후손이다. 전라남도 광양 출신이다. 1885년(고종22) 생원시에 장원급제 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고 구례에 은둔했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통분하여 하룻밤에 절명시(絶命詩) 4편을 짓고 음독, 자결하였다. 아래글은 절명시(絶命詩)의 일부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떠밀려 백발의 나이에 이르도록(亂離滾到白頭年), 몇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가 이루지 못했네(幾合捐生却未然).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으니(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 가물거리는 촛불 푸른 하늘 비추누나.(輝輝風燭照蒼天)…

향교 정문 풍화루를 중심으로 한 전경. 사진=한재만

광양향교(光陽鄕校)는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향교·교육 시설이다.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85년 2월25일 지정, 시도지정문화재 제111호)이다. 소재지는 전라남도 광양시 향교길 67(광양읍, 광양향교)에 위치한다. 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풍화루·동재·서재·상재(上齋)·재실·신문(神門)·제기고·홍살문·하마비 등이 있다.

광양향교 명륜당 일원. 사진=한재만

(하마비는 조선시대에 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기어 궁가, 종묘, 문묘 따위의 앞에 세웠던 비석을 말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광양향교는 1443년(세종 2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3년 군수 남내원(南來爰)이 지방유림과 협력하여 대성전을 먼저 중건하고 연차적으로 복원공사를 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보수와 개수를 거듭하였다. 민족 항일기와 6·25사변을 거치면서 완전히 퇴락하였던 것을, 1966년에 풍화루(風化樓)를 석주(石柱)로 대체하여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하였다. 1971년에 명륜당을 중건하고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는 한편, 풍화루 및 대성전의 단청을 새로 하였다.

정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맞배지붕 :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을 말한다)

향교는 교당부와 문묘부가 전후관계로 축배치를 이루고 있으나, 광양향교는 대성전의 문묘부를 명륜당 왼쪽에 두고 있는 좌우배치의 경사지건축이다. 명륜당과 외삼문의 기능도 갖고 있는 풍화루는 동재·서재의 중앙을 지나는 남동향의 축배치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후기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였다.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소장 전적은 165종 463책으로 전라남도의 향교 중 비교적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으나 ‘낙질본’이 많다. (낙질본,落帙本 : 한 질을 이루는 책에 몇몇 권이 빠지고 없어 권수가 갖추어지지 아니한 책)

금번 광양시가 문화유산 활용 『시·공간의 기억, 광양향교』 ”매천황현, 시패(試牌)를 찾아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초등학생들이 광양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공부하는 기회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재만 기자
한재만 기자
광양 P사 32년 근무, 정년퇴직. 취미활동 :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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