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회: 만로국(萬盧國)이라 불린 땅…용강리 고인돌이 품은 비밀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이번 주부터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 초고층 아파트 숲 사이, 3천 년 전 ‘삶의 자리’를 마주하다
광양읍내에서 남해고속도로 지하도를 지나 용강리로 들어서면 시간이 겹쳐진 기묘한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눈앞에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창덕·송보·남해오네트 아파트 단지들, 그 거대한 현대의 성벽 아래 나지막이 엎드린 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용강리 기두마을의 고인돌입니다.
– “고인돌은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삶의 집합체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인돌을 ‘죽은 자의 무덤’으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고인돌은 오히려 ‘살아있던 사람들의 가장 뜨거운 증거’입니다. 무덤은 마을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 톤에서 수십 톤에 이르는 거대한 덮개돌을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의 노동력과 이를 조직할 강력한 공동체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이곳 용강리는 마로산성 아래 배산임수의 천혜 요새로, 예부터 ‘개천에 든 소가 양쪽 언덕의 풀을 뜯는 듯한’ 넉넉한 터전이었습니다. 3천 년 전 청동기 시대 사람들도 이곳 동천의 물길을 따라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풍요로운 ‘만로국(萬盧國)’의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 베틀머리 마을에 실린 고대의 숨결
기두(機頭)마을은 북쪽 옥녀봉의 옥녀가 베를 짜는 형상 중 머리에 해당한다 하여 ‘베틀머리’라 불립니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오가는 수많은 차량의 행렬이 마치 베틀에서 실을 담은 북이 오가는 것과 같아 마을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설화는, 이곳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요충지임을 말해줍니다.
1999년 택지 개발 당시, 이곳에서는 고인돌 4기와 석곽묘 30기,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움집 터가 대거 발굴되었습니다. 간돌검, 돌화살촉, 그리고 붉은간토기와 옥구슬까지…. 당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정교한 기술과 미적 감각은 오늘날 세계적인 철강 도시 광양의 기술적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짐작게 합니다.
– “어릴 땐 그냥 숨바꼭질하던 큰 돌이었지요”
기두 마을 회관 앞에서 만난 85세의 어르신은 고인돌 곁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장사하며 자식들을 키우느라 돌이 유물인지도 모르고 사셨다는 어르신은, 이제는 공원이 된 이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옛 유행가를 크게 틀어놓고 휴식을 취하십니다.
“예전엔 풀 속에 묻혀서 잘 보이지도 않았어. 그냥 우리 놀이터였지. 그런데 이렇게 귀한 것이라니, 이 돌을 마을에 남겨두길 참 잘했어.”
하지만 안타까움도 남습니다. 고인돌 공원은 아파트 단지와 상가 건물 사이에 묻혀 접근성이 떨어지고, 오가는 이들 대다수는 이 돌이 3천 년 전 조상들의 숨결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무심히 지나칩니다. 고인돌은 남았는데, 그 곁에서 도란도란 이어지던 마을의 이야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 돌은 말이 없지만, 자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용강리 고인돌은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땅으로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듯합니다. 하늘로만 높아지는 욕망의 시대에, 낮게 엎드린 고인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이 돌을 세웠고, 누가 지금 이 돌을 기억하고 있는가?”
유물은 유리 진열장 안에 갇힌 박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누군가 산책을 하고, 아이들이 공을 차는 그 일상 한가운데 고인돌은 놓여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은 채 겹겹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광양의 시간입니다.
– 시간을 들어 올린 돌
고인돌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돌덩이를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그 돌을 세웠던 고대 ‘만로국’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과 그 곁을 지켜온 마을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용강리 고인돌은 묻혀 있던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서 진행 중인 이야기입니다.


‘고인돌은 죽은 이를 덮은 돌이 아니라, 살아 있던 사람들의 시간을 들어 올린 돌이다.’
용강리 고인돌이 품은 비밀을 뒤로하며, 다음 여정은 마로산성을 찾아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에서 성벽의 돌들이 속삭이는 ‘수호’의 철학을 찾아갑니다.
[다음 회 예고] 제3회: 마로산성(馬老山城), 돌로 쌓은 경계와 지키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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