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이는 자리는 기쁨인 동시에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오해가 쌓이면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분쟁으로 번져 노년의 품격을 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정읍에서 벌어진 사건은 작은 불만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우리 모두에게 경각심을 준다.
지난 1월, 전북 정읍에서 벌어진 70대의 살인·시신 은닉 사건은 한 사람의 앙심과 집착이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벌통 분쟁에서 비롯된 갈등은 폭력과 은닉, 재판으로 이어져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이 선고됐다. 사소한 불만이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은 노년의 삶이 품격 있게 유지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깊은 물음을 던진다.
왜 노년의 갈등은 폭력으로 이어졌나
가해자가 드러낸 표면적 이유는 벌통에 여왕벌이 없었다는 불만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노년기에 흔히 드러나는 복합적 문제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상처와 불만이 고착화되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고집과 앙심이 커진다. 건강과 경제적 취약성 또한 분노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사회적 고립과 갈등 해결 장치의 부재도 문제다. 이웃이나 가족과의 연결이 약할수록 갈등은 내부에서 증폭된다. 더불어 정서 관리와 분노 조절 능력의 저하, 정신건강 문제의 방치 역시 노년기의 갈등을 폭력으로 키우는 중요한 원인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노년의 자세
이번 사건은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를 일깨운다. 시니어 스스로는 분노가 치밀 때 시간을 두고, 증거를 남기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가족과 이웃은 고령자가 특정인에게 집착하거나 앙심을 품는 조짐이 보일 때 조기에 대화와 상담을 권유하고 갈등 상황에서 동행과 중재를 통해 예방에 나서야 한다. 복지관과 경로당은 갈등 조정 매뉴얼과 중재자를 두고 정서·분노 관리 교육, 법률 상담 등을 연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고립된 고령자를 조기에 발견할 복지망을 강화하고, 일자리 사업에는 분쟁 예방 교육과 신고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내려놓음과 배려 절실
나이는 단순한 숫자이지만, 어떤 어른으로 남을지는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보살핌에 달려 있다. 이번 사건은 노인의 마지막 품격을 욕심과 고집으로 더럽힐 것인지, 아니면 내려놓음과 배려로 존경받을 것인지 묻고 있다. 작은 양보와 타인을 향한 배려가 모이면,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하고 따뜻한 노년을 보장할 수 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112나 119로 즉시 연락하고, 일상적 갈등은 주민센터·복지관·대한노인회 등을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